인간의 몸으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 중 하나로 단약(丹藥)을 만들어 먹는 것이 있다. 심성을 깨끗이 갈고 닦아 수행을 쌓은 자들이 그 맑은 기운을 불어넣어 만들어내는 이 약은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효과를 내는 단약을 만드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많은 수행자들이 완벽한 단약을 만들기 위해 도전을 거듭하였으나, 대부분의 결과물은 불완전했다. 불완전한 단약 중 단지 병을 낫게 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은 하약(下藥),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능이 있는 약은 중약(中藥)이라 불렸다. 이에 비하여 완벽한 단약은 상약(上藥), 혹은 금단(金丹)이라 하는데, 이 약을 먹으면 수명이 수백 년 연장되고, 하늘을 날거나 귀신을 부리는 등 신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랑야각주가 이 약을 만들기 위해 강호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세월이 무려 9년이었다. 신의라 불리는 의원이자 하늘 아래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는 랑야각의 주인인 그가 단약의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강호를 헤맨 것은, 단지 그것이 랑야각에 없는 정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소중한 벗이 있었다. 벗의 이름은 매석남 혹은 임섭으로,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신분을 감추고 강호를 유람하던 대량의 귀공자였다.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이 잘 맞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깊은 우정을 쌓아올렸다. 후일, 임섭은 반역을 꾀했다는 누명을 쓰고 그가 이끌던 7만의 적염군과 함께 차가운 매령의 계곡에서 명을 달리하였는데, 간발의 차로 친우를 구하지 못한 랑야각주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던 친우의 아들, 임수를 랑야각으로 데리고 왔다. 임수는 화한독에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고, 수명을 깎아 치료를 행하였음에도 완전한 해독은 불가능했다. 각주는 최선을 다했고, 그럼에도 깨끗이 낫게 할 수 없는 것은 명백히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었기에, 안타깝지만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아들이 그 안타까운 운명과 엮여버리자, 각주는 더는 능력 밖의 일이라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매장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임수와 랑야각주의 아들, 린신이 서로에게 깊은 연정을 품게 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은 아들이 또다시 사랑하는 이를 잃는 아픔을 겪는 것을 원치 않았던 노각주는 매장소의 병을 낫게 하여 두 사람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바로 선인 갈홍이 만든 단약이었다.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선계의 것이다 보니 랑야각의 서고를 이 잡듯 뒤져도 많은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다. 노각주는 랑야각이 가진 소량의 정보들을 실마리로 단약의 제조법을 끊임없이 탐색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갈홍의 제자의 제자, 그리고 또 그 제자의 제자라는 이를 찾는 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그에게서 단약의 제조법을 배우는 데에 다시금 2년이 더 걸렸다. 형제는 애초부터 없었고, 평생토록 유일하게 은애했던 여인은 일찍이 떠나보내야 했던,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사내는 단 하나 남은 혈육인 아들을 위해, 그리고 아들의 정인이자 소중한 친우의 마지막 흔적인 아이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 그가 만든 단약은 보통의 수행자들보다 훨씬 빠르게 중약에 이를 수 있었다. 중약으로는 수백 년의 수명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오랜 세월 매장소를 괴롭혀온 화한독을 치료하고, 그간 화한독에게 빼앗긴 생명력을 회복시켜 보통 사람 정도의 수명은 보장할 수 있었다. 그 즈음, 매장소는 빙속단을 먹고 3개월의 시간을 얻어 전장으로 향하였고, 린신은 묵묵히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각주는 자신이 만든 단약을 갖고 지체 없이 그 전장, 과거, 소중한 벗의 무덤이 되었던 매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








  반쯤 정신이 든 매장소는 눈을 감은 채 등에 닿은 두툼하고 푹신한 요와 몸을 덮고 있는 모포의 감촉을 느꼈다. 눈꺼풀 위로 빛이 비치는 것으로 보아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인 것 같았다. 천근같던 눈꺼풀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매장소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매우 낯익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낯익으면서 동시에 아주 낯설었다.



  ‘어째서…….’



  눈을 뜨기 전까지 매장소는 자신이 전장의 막사 안에 누워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지금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금릉에 마련한 거처, 소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자신의 침소였다.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매장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소택이 맞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들기 전, 매장소는 빙속단의 힘을 빌려 버텼던 생의 마지막 석 달이 거의 다 되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상태였다. 운 좋게 죽지 않고 한 번쯤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는 몰라도 소택 내의 침소에서 눈을 뜨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그 이유로는 첫째, 그의 몸은 매령에서 금릉까지 돌아오는 여정을 온전히 버텨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둘째, 기적적으로 그것을 버텨내어 금릉에 돌아왔다 하더라도 이처럼 몸이 가벼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혹 내 명이 다하여 이미 저세상에 와 있는 것인가.’



  그러나 죽어서 혼만 남은 것이라기에는 생의 기운이 너무나 강하게 느껴졌다. 침상 머리맡에 놓인 화병에는 겨울의 끝, 그리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가 활짝 핀 나뭇가지가 꽂혀있었다. 매화는 본디 향이 강하지 않은 꽃이지만 한가득 모아 가까이 두니, 그 향이 온 몸을 채우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입 안에서는 미약하게 쓴 맛이 났다. 매일같이 들이켰던 탕약의 맛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모포의 감촉도 너무나 생생했다. 손을 들어 눈앞에서 쥐었다 폈다 하자, 볼품없이 마른 하얀 손의 움직임의 감각도, 그것을 지켜보는 시각도 너무나 선명했다. 죽어서 혼만 남은 것이라면, 그래서 이 몸은 허상일 뿐이라면 이렇게나 모든 것들이 뚜렷할 수 있을까.



  “장소……?”



  다행히 곧 매장소의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이 등장했다.



  “린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겐가?”



  매장소는 탕약을 손에 든 채 문가에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린신을 향해 물었다. 린신은 일어나 앉아 있는 매장소를, 놀라움과 기쁨, 두려움과 걱정이 섞인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소, 자네……. 정말로…….”



  성큼성큼 걸어 매장소에게로 다가온 린신의 눈동자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탕약을 내려놓고 매장소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렇게 깨어나 줘서, 살아있어 줘서 고맙네……. 정말로 고마워…….”



  린신의 목소리가 너무나 애틋하여 매장소는 차마 더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기만 하였다. 한참 만에 린신이 그를 놓아준 뒤에야 매장소는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매장소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이번에는 가까스로 늦지 않게 매령에 당도한 노각주가 린신에게 단약을 건넸다. 린신은 곧장 그것을 정신을 잃은 매장소에게 먹였다. 이후 전장을 정리하고 금릉으로 돌아와서도 이레가 더 지나도록 매장소는 줄곧 잠든 채였다. 린신은 매일같이 잠든 매장소의 손목을 잡고 맥을 살폈다.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맥박은 힘을 되찾고 있었지만 매장소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택으로 돌아온 뒤로 매일 세 번, 린신은 보약을 지어서 매장소의 침소를 찾았다. 이레 동안 스물세 그릇의 탕약이 잠든 매장소의 입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린신의 손에 들려있던 것이 스물네 번째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 뒤, 린신은 조금 주눅 든 표정으로 매장소의 두 손을 꼭 감싸 쥐었다.



  “혹 그대로 임수로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원했다면 미안하네. 이로서 자네는 그 기회를 다시 얻기 힘들어졌으니 말일세.”



  매장소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입가에 작고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자네가 사죄를 하는가? 미안하다 말해야 할 것은 나인데.”



  다소 놀란 듯, 린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어쩌면 매장소가 자신을 탓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약 석 달 전, 매장소는 다시금 임수가 되어 전장에 나아가 대량을 지키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저의 행복이라며 린신에게 빙속단을 내어달라 했었다. 참으로 잔인한 청이었다. 빙속초로 만든 그 약은 매장소의 몸 안에 남아있는 화한독을 깨끗이 없앨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남은 기력을 모조리 끌어다 쓰기 때문에 석 달이 지나면 꼼짝없이 그를 죽게 만들 것이었다. 린신은 언제나 매장소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린신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결국 그는 정인을 죽게 만들 그 약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 매장소가 죽음의 문턱을 넘기 직전, 그의 생을 연장시켜줄 방도가 생겼을 때, 린신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매장소를 살려냈다. 그 때 린신은 매장소의 행복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저와 매장소 사이에서 처음으로 이기적일지도 모를 선택을 했다. 생을 이어가는 것이 과연 매장소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과연 이것이 매장소를 위해 옳은 결정이었을까. 린신은 잠들어 있는 매장소의 얼굴이 점점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며 수도 없이 고민했다.



  “자네와 함께 강호 이곳저곳을 유람하겠다 약조도 하지 않았는가. 임수로서 살았던 열아홉 해의 삶은 분명 내 생애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네가 서운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매장소의 몸으로는 그 찬란한 시절을 재현할 수 없어.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임수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완전히 접은 상태였네. 그리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나는 매장소로서 자네와 함께하는 마지막을 그리고 있었어. 비록 옛 시절처럼 찬란히 빛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또 다른 행복을 안고 생을 마감할 수는 있을 테니. 허나, 임수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지니 차마 미련을 버릴 수 없더군. 그래서 자네에게 너무나도 잔혹한 짓을 하고 말았어. 그러니 사죄는 내 몫이네. 정말 미안하네.”



  이번에는 린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매장소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그러니까, 임수로서의 마지막이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생의 마지막을 매장소로서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해도 그것이 나와 함께라면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정녕 그리 이야기한 것이 맞는가?”



  매장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더 바랄 게 없네. 자네가 나와 함께해 주는 것……. 그것 하나면 다 되었네.”



  린신은 다시금 매장소를 감싸 안았다. 매장소의 귓가에 린신의 심장 소리가 울렸다. 조금 빠르게 뛰는 심장이 린신의 벅찬 심정을 대신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대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바깥에서 린신을 찾는 려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린 공자, 오늘도 동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종주께선 좀 어떠신지요.”



  린신은 매장소를 놓아주고는 빙긋 웃었다. 태자 소경염은 소중한 벗이자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충신이 하루빨리 기력을 되찾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를 바라며 매일 소택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상태를 물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자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어야겠군. 매 종주께서 깨어나길 기다린 것이 나 뿐만은 아니거든.”



  자리에서 일어난 린신은 매장소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한낮의 햇살이 방 안으로 한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오늘 장소는 그 어느 때보다 상태가 좋다네. 그러니 소택 식구들을 불러오게. 종주께서 깨어나셨으니 자네들이 직접 뵙고 문안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려강은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눈만 끔뻑이다가 이내 린신의 말을 이해하고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종주께서 깨어나셨다고요?!”



  린신은 뒷짐을 진 채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려강은 신이 나서 달려 나가며 종주께서 깨어나셨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동궁에서 보내온 사람은 린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태자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동궁으로 향하였다.


  잠시 후, 려강과 견평, 비류, 안 의원, 그리고 매령에서부터 함께 금릉으로 와, 아직 랑야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고 있던 노각주까지 모두 매장소의 침소로 모여들었다. 다른 소택 식구들 역시 매장소의 처소 안뜰로 몰려와 방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한껏 귀를 기울였다.



  “소 형아!”



  비류는 일어나 앉은 매장소를 보자마자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매장소는 언제나처럼 제 무릎을 베고 허리를 끌어안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그 작음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들어 저를 보러 온 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르신.”



  그는 가장 먼저 노각주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린신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이렇게 또 다시 목숨을 빚지게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노각주는 인자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너는 이미 내 아들이나 진배없다. 그저 이제까지 그래왔듯 신이와 잘 지내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해.”



  매장소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있던 린신은 정인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매장소의 시선이 잠시 린신에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의원님께서도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 의원은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었다.



  “꼭 앞으로는 고생 시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단약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해도 형편없는 체력은 여전하니 내 고생길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네만!”



  불평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안 의원의 낯에도 안도감과 기쁨이 서려있었다.



  “예. 앞으로도 고생 많으실 겁니다. 미리 사죄드리지요.”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매장소의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 꼴을 본 안 의원이 헛웃음을 짓자, 매장소도 나지막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갈무리한 뒤, 그의 시선은 상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방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려강과 견평에게로 향하였다.



  “자네들도―”
  “흡……, 예, 종주…….”



  입을 열자마자 려강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매장소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견평은 저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주제에 려강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달래었다.



  “자네들도 그간 나 때문에 마음 괴로운 일이 많았으니 그리 눈물을 보이는 것이겠지. 이제부터는 좀 더 나은 주군이 되어보겠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견평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황급히 닦아내고 매장소를 향해 말없이 부복하였다. 려강도 훌쩍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하게도 다들 내 걱정을 많이 했던 모양이군.”



  마지막으로 매장소는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안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해에는 춘절을 전장에서 맞이한 탓에 명절 분위기를 조금도 즐기지 못했을 터이니 핑계도 적당하고……. 연회를 열도록 하지. 술과 고기를 아끼지 말게. 지난 세월, 수도 없이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한 사죄이며, 또한 감사의 의미일세.”



  현판을 걸던 순간부터 줄곧 고요하였고, 매장소의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침묵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던 소택은, 죽음을 저 멀리로 밀어낸 주인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듯 즐거운 소란을 피워냈다.








***








  금릉의 많은 이들이 임수를 사랑했지만, 임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매장소였다. 그렇기에 매장소는 모든 누명이 벗겨진 뒤에도 자신의 정체가 공공연히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금릉에서의 매장소는 뒷방에 앉아 교묘한 술책이나 부리던 자로, 임수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러한 매장소의 행적으로 임수의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빙속단을 내어달라는 청을 하던 순간의 매장소는 린신에게 임수로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린신에게 작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단약으로 생을 얻은 매장소는, 뜻하지 않게 주어진 생에 대하여 어떤 선택을 할까. 린신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애정을 준 이들을 쉬이 외면하지 못하는 매장소의 성정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만은 막아 주리라는 것 정도였다. 남은 생을 임수로서 살아가다가 후일 임수로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것인가, 전부 포기하고 매장소가 되어 살아갈 것인가. 분명 선택지는 그 두 가지일 것이었다. 린신이 잠든 매장소를 금릉으로 데리고 온 것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였다. 그것이 네 행복이라면 임수로서의 삶을 택해도 나는 괜찮다, 라는.


  선택지가 두 가지 뿐일 것이라는 린신의 추측은 큰 의미에서는 적중하였다. 매장소는 임수로서의 삶과 매장소로서의 삶 중에서 매장소 쪽을 택했다. 다만, 린신의 생각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매장소로서의 삶은 포기가 아니라 또 다른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임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단 금릉으로 돌아온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덕분에 매장소가 자신을 임수로서 사랑해준 이들에게 정식으로 작별 인사를 건넬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그 인사를 받아야 하는 이는 소경염이었다.



  “결국 강호로 돌아가는가.”



  소경염의 짙은 눈썹 끝이 아래로 축 쳐졌다. 매장소는 미안한 듯 어정쩡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임수일 수는 없다고. 물론 매장소로서 자네 곁에 남는 것 또한 안 될 일이지. 자네는 어린 시절 우리가 황장형을 통해 꿈꾸었던 천하를 실현해 나갈 유일한 사람이야. 매장소는 자네의 완벽한 출발에 오점이 될 뿐일세.”



  매장소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 소경염 역시 친우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라면서 줄곧 같은 가치관을 공유했고, 그렇기에 매장소가 임수를 어찌 생각하는지, 그리고 또한 매장소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아쉬워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이제야 임수가 제자리로 돌아간 게야. 아버지와 어머니, 기왕 형님, 그리고 7만의 전우들이 있는 곳으로. 이제 이곳에 남은 것은 매장소 뿐이네.”



  소경염은 온전히 매장소가 된 임수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내게 너는 그저 임수일 뿐이다. 우리는 친형제보다도 가까웠고, 한 몸이나 진배없는 벗이었으니 이것 하나만 네 자신에게 허락해다오.”



  매장소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소경염의 손을 맞잡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에게만은 임수로 남도록 하지. 매장소로서 금릉에서 지내는 내내 자네를 속였으니, 그에 대한 속죄라 여기겠네. 허나, 그동안 임수를 숨기고 매장소로서 자네를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가 된 것일 뿐, 앞으로의 나는 온전히 매장소일세. 알겠는가?”



  소경염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붉어진 눈을 하고서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을 많이 마셔 물소, 눈물이 많아 물소. 친우의 별명을 떠올린 매장소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미 한 번 임수를 잃은 자네에게 또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고 마는 나를 용서하게. 실은, 모든 일이 끝나고도 내게 생이 남아있다면, 그 남은 생을 함께하기로 약조한 이가 있네. 그는 내가 내세까지 모두 바치더라도 그 은혜를 전부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은인이고, 이 매장소의 유일한 벗이며, 또한…….”



  매장소는 잠시 뜸을 들이며 심호흡을 하였다.



  “정인일세.”



  소경염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흡,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더니 꼭 쥐고 있던 매장소의 손을 황급히 놓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매장소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자네가 내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거늘.”



  소경염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랑야각은 모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는 랑야각 소각주이니 이곳에 그가 없다 해도 주의해야 하지 않겠어?”



  매장소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웃는 낯에 더 이상 병색이 비치지 않는데다가, 비록 생김은 달라졌어도 그 밝은 표정이 비로소 어린 시절의 임수와 겹쳐 보이는 것 같아, 결국 소경염도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매장소는 몽지의 집과 국구부를 차례로 들러 작별 인사를 건넸다. 몽지는 임수로서 살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매장소의 이야기에 소경염과 마찬가지로 아쉬움을 나타내었으나 붙잡지는 않았다. 그저 소식이나 자주 보내오라며 웃어줄 뿐이었다. 국구 언궐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금릉을 떠나 본래 있던 강호로 돌아가기에 앞서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매장소의 말에 언궐의 낯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매장소는 그 때, 언궐이 자신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러 모른 척 넘겼다. 언궐 역시 매장소가 모른 척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추궁은 하지 않았다. 친조카나 다름없었던 임수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아는 탓이었다.


  전쟁이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운남을 떠날 수 없는 목예황에게는 서신으로 인사를 대신한 뒤, 매장소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임부의 사당이었다. 린신은 매장소가 다른 이들을 만나러 갈 때에는 혼자 가게 두었으나 이때만은 그를 따라 나섰다. 사당에 들어선 매장소는 곧장 효기장군 임수의 위패 앞으로 향하였다. 그 위패에는 붉은 천이 덮여 있었다. 소경염이 덮어둔 것이었다. 매장소는 슬픈 표정으로 그 붉은 천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그것을 걷어내었다. 비로소 임수의 위패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매장소는 소매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함을 꺼내 그 안에 든 것을 임수의 위패 앞에 놓았다. 소경염이 임수에게 주기 위해 동해에서 구해온 커다란 진주였다. 그런 뒤에야 그는 향을 피워 올렸다. 향내가 사당을 가득 채워 현기증이 날 정도가 되었는데도 매장소는 계속해서 화로에 향을 쏟아 넣었다. 시중을 들기 위해 매장소를 따라 나선 려강과 견평은 매운 연기 때문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두 눈을 꼭 감았다 절반 정도만 떴다하기를 여러 번 반복 하였다. 린신은 그들을 향해 물러나라는 손짓을 하였다. 려강과 견평이 사당에서 멀어지자, 린신은 여전히 향을 태우고 있는 매장소에게로 다가갔다.



  “장소.”



  나지막한 부름과 함께 매장소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은 린신은 자신의 손을 매장소의 손등 위에 겹쳤다. 끊임없이 향을 태우던 손이 비로소 멈추었다. 붉게 충혈 된 매장소의 두 눈이 린신의 소매에 의해 가려졌다.



  “연기 때문에 눈이 많이 매울 게야. 그렇지?”



  매장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려진 눈 아래에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매장소는 그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린신은 매장소를 자신에게로 좀 더 바짝 끌어당겼다. 린신의 따뜻한 체온이 매장소의 등을 다정하게 감쌌다.



  “눈물이 나는 건 당연해. 나도 이 연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걸.”



  매장소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린신은 매장소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다. 화로 위로 잔뜩 쏟아 넣은 향이 모두 하얀 재로 변하고 활짝 열린 문으로 연기가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두 사람은 미동도 않고 그대로 앉아 서로의 옷자락에 눈물을 닦았다. 매장소는 그렇게 임수를 보냈고, 린신은 괴로운 이별을 한 정인을 말없이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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