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섀도우헌터스/말렉] The Same

오리지널 말렉과 AU말렉이 만난다면...?

* 등장인물은 모두 드라마 기준입니다.

* 일부 설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 오리지널/AU 말렉 넷이 만난다는 것 외에는 내용이 없습니다(...)










  섀도우 월드에서 가장 유명한 월록, 매그너스 베인은 자신의 로프트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텅 빈 집을 바라보며 마티니를 한 모금 들이켰다. 붉은 노을로 뒤덮였던 브루클린의 하늘은 점점 더 어둡고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중이었고, 그에 맞추어 로프트 곳곳에 놓인 초에서 하나 둘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마티니를 한 모금 더 머금고는 그 은은한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실내조명으로 촛불을 사용하는 것은 순전히 그 빛깔의 온도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절반은 악마인 월록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성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그너스는 줄곧 그 따스하고 잔잔한 빛을 좋아했다. 사랑하는 이의 품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나이만큼이나 정이 많은 이 월록은 수 세기 불멸의 삶을 이어오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잃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와 연인까지, 떠나간 이름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려면 몇날며칠 쉬지 않고 헤아려도 모자랐다. 거듭된 상실은 그에게 고독을 선물했고, 끊임없이 온기를 찾아 초를 밝히도록 만들었다. 화려한 파티나 문란한 밤놀이도 외로움을 잊기에 그다지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그런 것들은 지나고 나면 몇 배나 더 큰 공허함을 남겼다. 반면, 촛불은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따스한 빛도 영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감당 못할 정도로 큰 상실을 겪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매그너스가 이제까지 살아온 수백 년의 삶과 앞으로 살아갈 영겁의 시간을 모두 바쳐서 사랑해도 모자를 그의 연인, 알렉산더 라이트우드는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고,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문제가 있어 다소 서먹해진 상태일 뿐이었다. 수백 년간 위로가 되어준 작은 불빛들이 과거의 상실에 비하면 매우 사소하고 일시적인 허전함을 전혀 달래주지 못한다는 것은 곧 알렉을 향한 매그너스의 마음의 깊이가 그만큼 까마득하게 깊다는 뜻이었다.


  “이런 식이면 평화라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네. 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면 이런 걸로 엇갈릴 여유조차 없었을 테니.”


  어느새 술잔을 말끔히 비운 매그너스는 손가락을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간단히 빈 잔을 치워버리고 소파 위에 길게 누웠다. 저밖에 없는 집에서 홀로 내뱉는, 글자 그대로의 혼잣말이 부쩍 늘어난 것은 최근 사흘 사이의 일이었다.







***







  두 달 전, 발렌타인으로부터 시작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온 싸움에서 아군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매그너스와 그의 연인 알렉산더 라이트우드, 그리고 알렉의 동료들이 함께 세운 공이었다. 전쟁을 겪는 동안에는 온갖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계속해서 난제를 만들어냈으나, 승리 이후로는 반대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처음은 매그너스의 마력이었다. 아스모데우스에게 도움을 얻는 대신 마력과 불멸을 대가로 지불했던 그는 먼데인이나 다름없는 몸이 되어서도 연인과 함께 이돔과의 전쟁에 나섰다. 지옥의 군주는 힘을 잃은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와 애원하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그의 아들은 마력이나 불멸 따위에 매달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사랑을 쫓았던 것이다. 대악마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방식이 잔혹하기는 했지만, 매그너스를 아끼는 아스모데우스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결국 그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선 사랑하는 아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빼앗았던 힘을 돌려주게 된 것이었다. 그 직전까지 자신이 불멸이라는 것 때문에 알렉과 갈등을 겪고 있었던 매그너스는 과연 마력과 불멸을 돌려받은 것이 잘 된 일인지 조금 헷갈렸다. 하지만 알렉은 그가 모든 능력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다. 불멸자인 연인이 자신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물론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이 무거운 죄책감이 되어 그를 짓눌러왔던 것이다. 불멸과 필멸에 관한 문제는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일단은 알렉이 기뻐하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매그너스는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잘 된 일은, 결과적으로 마력을 되찾은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매그너스가 잠시간 모든 힘을 잃었던 일이 브루클린 월록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었다. 그가 마력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이돔에서 도움을 구해야 했던 일의 배경에는 로렌조 레이가 있었다. 매그너스가 제이스를 구하려 했던 것은, 물론 그가 알렉의 파라바타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릴리스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기심에 시야가 좁아진 로렌조는 이를 그저 매그너스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며 릴리스에 관한 이야기는 완전히 무시해버렸고, 그 사이 릴리스는 아들을 깨우는 데에 성공했다. 이러한 정황이 알려지자마자 브루클린 월록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난 끝내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내 일부인 파라바타이를 버릴 각오를 했고, 매그너스는 마력을 내놓으면서까지 릴리스를 막으려 했는데, 브루클린의 하이월록으로서 당신은 뭘 했지? 마땅히 협력해야 할 뉴욕 인스티튜트의 수장을 속이고, 동족인 월록들을 보호해야하는 하이월록의 임무조차 망각한 채, 매그너스를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지 않았나? 당신이 내게는 협력을 약속하고 뒤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대처가 늦어졌고, 결국 릴리스의 아들이 깨어났어. 쉽게 끝낼 수 있었던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건 당신이야. 클레이브에 모든 정황을 보고하겠어.”


  알렉이 엄포를 놓은 것이 결정타로 작용하여 로렌조는 거의 강제로 하이월록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브루클린의 월록들은 매그너스가 다시금 하이월록으로서 자리하기를 바랐고, 매그너스는 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제자리를 찾은 브루클린의 ‘진짜’ 하이월록은 비로소 아무 걱정 없이 어린 네피림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는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게 되었다.

  처음 한 달간은 확실히 기대 이상이었다. 알렉은 매일 매그너스의 로프트에서 밤을 보냈고, 두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를 돌며 데이트를 즐기고, 뉴욕 상공을 날아다니며 야경을 구경하고, 때로는 하루 종일 침대 위를 뒹굴기도 했다. 물론, 전부 다 이전에도 했던 것들이었지만, 갑자기 적이 나타나 그 시간을 망쳐놓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몇 배는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스스로의 나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아프고 힘들었던 일만큼 좋은 일 역시 꽤나 있었는데도, 매그너스에게는 알렉과 함께하는 순간이 그 모든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한 달이 다 지나가자마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쟁을 치르며 능력을 인정받은 뉴욕 인스티튜트의 수장에게, 알리칸테 의회는 또 다시 이드리스로 돌아와 중책을 맡을 것을 요구했다. 알렉은 당연하게도 현재의 자리를 고집했고,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의회와 며칠간 줄다리기를 한 끝에, 뉴욕에 머물면서 알리칸테에서 요청하는 몇 가지 일을 더 맡아 처리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연인의 곁을 떠나지 않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책임져야 할 일이 배로 늘어난 만큼 그 연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만을 감추지 못하는 알렉에게, 매그너스는 일부러 더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인정받는 건 나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야, 알렉산더. 서로의 손이 닿는 곳에 있으니까, 그걸로 됐어. 네가 이드리스로 떠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보다, 나 파티 좋아하는 거 알지? 날 잡아서 네 진급 축하 파티를 열자. 섀도우 헌터든 다운월더든 잔뜩 초대해서 아주 큰 파티를 여는 거야. 그리고 나는 뉴욕 인스티튜트 수장님의 손을 꼭 잡고, 잔뜩 콧대를 높인 채 파티장을 돌아다니면서 잘난 애인을 자랑하는 거지.”


  다소 과장된 감은 있었으나 매그너스의 미소는 전부 진심이었고, 어렵지 않게 그 진심을 읽어낸 알렉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불어난 일들과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지상에 출몰하는 데몬을 처리하는 평소의 임무까지 모두 끝내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너무 늦거나 혹은 너무 이른 새벽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채로는 매그너스의 로프트로 돌아가더라도 잠시 눈만 붙였다가 다시 나와야 했고, 이러한 생활이 한 달간 계속되자, 혈기왕성한 섀도우 헌터의 인내심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의회하고 다시 얘기를 해봐야겠어. 한 달 내내 여기까지 와서는 겨우 잠만 자고 다시 나가야 했고, 제대로 된 휴일도 없었잖아. 정말 더는 안 되겠어.”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불평을 늘어놓는 알렉을, 매그너스는 다정한 손길로 끌어안았다.


  “오, 내 천사.”


  매그너스의 손가락이 거뭇해진 알렉의 눈가를 가볍게 스쳤다.


  “갑자기 일이 늘어서 많이 피곤하지? 며칠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푹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테니, 이 브루클린 하이월록이 간만에 실력 발휘를 해야겠는걸? 나만한 월록이 만든 포션이라면 피로 따위는―”
  “매그너스.”


  알렉이 제 얼굴을 쓰다듬는 매그너스의 손을 붙잡으며 말을 끊었다.


  “피로 같은 건 상관없어. 내가 신경 쓰는 건 당신이야. 일 끝나고 오면 잠들기 바빠서 그저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잠들기 전이랑 깨어난 후의 짧은 시간이 전부였어. 이제야 비로소 아무 걱정 없는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는데, 클레이브가 다 망친 셈이잖아. 당신은 이게 아무렇지 않아?”


  그의 목소리에 서운한 기색이 비치고 있었다. 매그너스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매그너스는 이미 두 번이나 자신 때문에 매력적인 제안을 포기한 알렉이 그나마 지금 그에게 주어진 것들마저 포기해버리지는 않았으면 했다. 400년 넘게 살아온 월록은 사랑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부러 알렉이 무엇에 불만을 품고 있는지 모른 척 피로회복 따위의 이야기나 늘어놓은 것이었다.


  “알렉산더. 네가 나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우리의 시간이 줄어든 건 아쉽지만, 네가 중책을 맡는 건 당연한 일이야.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되니까. 나는 진심으로 네가 더 존경받고,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어.”


  매그너스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알렉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내가 우리의 관계보다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결국 그는 매그너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매그너스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며 다시 한 번 연인을 품에 안아 달래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연인은 그 손길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 봐야해. 조언 고마워. 아무래도 당분간은 못 올 것 같아. 당신 말처럼 일이 많아서 좀 피곤하거든. 앞으로는 여기까지 오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잠을 자야겠어.”


  알렉은 매그너스가 말을 걸어올 틈을 주지 않고 재빨리 옷을 챙겨 입더니 인사도 없이 로프트를 빠져나갔다.







***







  그 날로부터 사흘이 지났고, 그 동안 매그너스는 알렉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지 못했다. 알렉이 더는 로프트를 찾아오지 않는데다가, 매그너스 쪽에서 찾아갈 수도 없도록 그의 사적인 방문을 금지한 탓이었다.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오기였다.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 경우에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 어디 견딜 수 있으면 견뎌봐라, 하는. 물론, 그런 방법이 노련한 월록에게 통할 리 없었다. 어차피 곧 인스티튜트에서 다운월드 회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매그너스는 이대로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브루클린의 하이월록으로서 회의에 참석해, 공적인 관계로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위치가 갖는 중요성과 책임감을 상기시켜 줄 생각이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관계만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지, 알렉산더. 우리를 믿고 책임을 맡긴 사람들의 기대와 애정을 무시하면 안 될 일이야. 게다가 넌 그 일을 사랑하니까…….”


  매그너스는 알렉에게 말을 건네듯 또다시 혼잣말을 했다.


  “……그게 옳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무슨 커다란 사건이라도 터졌으면 싶네. 그 핑계로 만날 수 있게.”


  그 역시 알렉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였으니, 알렉이 찾아오지 않는 로프트가 주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곳곳에 남은 알렉의 흔적은 촛불이 내뿜는 온기를 그리움으로 바꾸었고, 그리움은 쓸쓸한 느낌을 더욱 증폭시켰다. 하이월록이 아니었다면 쓸쓸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손님맞이라도 했을 텐데. 매그너스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든 즐거운 것이 필요했다.

  우선 그는 가깝게 지내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카타리나와 루시안은 야간 근무 중이니 불러낼 수 없었다. 헌터스문에 가면 마이아가 있겠지만, 그곳은 그녀의 일터이니 결국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터였다. 작은 비스킷은 제이스와 데이트가 있다고 했고, 이자벨은 이미 보름쯤 전부터 오빠의 일을 돕느라 다른 데에 쓸 시간이 없었다. 며칠 전에 듀모르에 새 식구가 생기는 불상사가 있었으니, 신참을 돌보느라 바쁜 뱀파이어들에게는 연락해봤자 소용없을 테고……. 브루클린의 월록들은 여전히 하이월록과 네피림의 교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차마 하이월록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은근슬쩍 헤어지면 안 되겠냐는 식의 이야기를 빼먹는 법이 없었으니 이런 시기에 만날 이들은 못 되었다. 옛날 같았으면 판데모니움 한쪽 구석에서 종족, 성별 가리지 않고 양 옆구리에 서넛씩 끼고 방탕하게 놀며 시간을 때웠겠지만, 진심을 다해 사랑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것에 조금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마주앉아서 알렉산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지…….”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던 매그너스는 불현듯 무언가 떠올라 급히 화이트북을 꺼내와 펼쳤다. 마법으로 두꺼운 책을 빠르게 훑다가 마침내 멈춰 선 페이지에는 매우 복잡한 마법식과 함께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정렬되어 있는 태양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매그너스가 한 손을 활짝 펴자, 그의 손바닥 위로 책에 그려진 것처럼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모양의 반투명한 태양계 모형이 생겨났다. 그는 미간을 좁힌 채 다른 손을 모형 앞에 대고 휘저었다. 그 손짓에 따라 행성들은 태양 주변을 각자의 속도로 공전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행성들 중 네 개가 나란히 정렬되었고, 매그너스의 손짓이 거의 멈춘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느려졌다. 자그마한 행성들은 이제 매우 천천히 움직였고, 마침내 정렬이 흐트러지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그는 양 손을 털었다. 반짝이는 홀로그램 같았던 태양계 모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매우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며, 매그너스는 로프트 주변에 방어막을 쳤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변을 지나는 먼데인들로부터 감추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알렉의 부재가 주는 쓸쓸함을 지우기 위해 매그너스가 떠올린 재미있는 일이란, 바로 다른 차원의 자신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클레리가 조슬린을 찾기 위해 평행 세계로 향했을 때 보았던 것들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곳의 매그너스 베인은 한가롭게 타로 점이나 봐 주면서 먼데인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살아온 세상이 다른 만큼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매그너스 베인이니 알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최적의 상대가 아닐까.

  다만, 차원 이동은 아무 때나 가능한 마법이 아니었다. 특히나 매그너스가 원하는 것은 마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보통의 경우, 차원을 넘어가면 그 차원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매그너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자신과 직접 마주하는 일이었다. 화이트북에 따르면, 항성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들 중 세 개 이상이 일렬로 서면 그 사이에서 독특한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그 에너지를 마력과 함께 이용하면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엄청나게 운이 좋은 브루클린의 하이월록은 마침 오늘 밤, 태양계의 행성 네 개가 직렬이 되는 것을 확인했고, 당장 그 마법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하늘이 잘 보이는 테라스로 나간 매그너스는 화이트북을 꼼꼼히 살피며 바닥에 마법식을 그렸다. 마력을 잃었다가 되찾은 이후 처음 시도하는 복잡한 마법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매그너스는 스펠을 읊조리며 마법식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마법식을 이루는 선 하나하나가 점차 밝은 빛을 내었고, 그 주변으로 서서히 바람이 일었다. 이런 마법은 한꺼번에 많은 마력을 쏟아붓기보다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힘을 쌓아올려야 했기에 매그너스는 양 손 끝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역시 마력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마법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일까. 일순간 매그너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손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큭……!”


  즉시 마법을 중단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그려진 마법식이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복잡한 수식이 잔뜩 그려진 그 펜타그램은 매그너스의 마력을 거의 바닥까지 빨아들인 뒤에야 그를 놓아주었다. 동시에 폭발과도 같은 강한 파동을 일며 매그너스의 몸이 맞은편 벽까지 날아갔다. 그 기세에 집 안의 가구들이 흔들리거나 넘어지면서 온갖 집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매그너스는 벽과 부딪친 등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일났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딱 죽지 않을 정도만 남기고 모든 마력을 소진해버린 것이다. 로프트 주변에 둘러쳤던 방어막은 물론, 월록 표식을 감추고 있던 글래머까지 전부 풀려 있었고, 아마도 몇 십 분 정도는 눈동자를 감출 수 없을 터였다. 시전자가 이 꼴이 되었으니 마법은 실패했을 것이 분명했다.


  “매그너스……? 우리 조금 전까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지 않았나요?”


  그러나 저 혼자뿐이어야 할 로프트에서 다른 사람의, 그것도 아주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매그너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 그,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그런 문제가…….”


  뒤이어 들려온 또 다른 낯익은 목소리에, 매그너스는 여전히 떨림이 멎지 않은 두 손에서 시선을 돌려 테라스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테라스에는 어느새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둘 중 키가 조금 더 작은 쪽과 매그너스의 시선이 서로 맞닿았다.



  “매그너스 베인.”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매그너스는 테라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현기증이 심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다른 차원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정말이네. 정말로 매그너스 베인이야. 그렇지?”


  아무도 없었던 테라스에는 화장기 없는 얼굴의 다소 순진해 보이는 또 다른 매그너스 베인이 서 있었다. 약간의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어려운 마법을 성공해낸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매그너스는 자꾸만 위로 향하는 입 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반면, 또 한 명의 매그너스의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운 기색만 가득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었어. 비스킷이 말하길, 다른 차원의 매그너스는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했거든.”


  언제나 적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했던 시기를 벗어났기 때문인지, 마력을 전부 소진했음에도 매그너스는 잔뜩 신이 나고 들뜬 모습이었다.


  “오, 내 이름을 내가 직접 부르려니 기분이 좀 이상하네. 매그너스, 베인, 매그너스 베인……. 그래, 성으로 부르면 좀 낫겠어.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이쪽.”


  매그너스가 손끝으로 테라스에 나타난 다른 한 명을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차분한 파스텔 톤 자켓을 입은 맨 얼굴의 ‘베인’에게 고정된 채였다.


  “알렉산더 라이트우드라니, 정말 너무 나다워. 물론 두 사람을 함께 부를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조금 색다른 데이트 정도로 생각하라고. 내 계산대로라면 앞으로 사흘간은 차원 이동이 가능하니까 서두를 것 없어. 실수로 두 명을 한꺼번에 소환하는 바람에 마력이 바닥나긴 했지만 매그너스 베인이 한 명 더 있으니 걱정할 것도 없고. 너무 오랫동안 먼데인처럼 살아서 마법을 능숙하게 쓰지 못한다지? 뭐, 상관없어. 그렇다고 타고난 강한 마력이 사라지진 않으니까. 사흘 안에 내 마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는다면 너에게 필요한 만큼 받으면 될 일이야. 아무튼, 차원 너머의 매그너스 베인, 그리고 알렉산더 라이트우드, 내 세계에 온 걸 환영해.”


  가벼운 말투로 반가움을 나타내는 매그너스와는 달리, 베인은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제 이마를 짚었다. 차원을 넘어온 ‘먼데인’ 알렉은 도무지 믿기 힘든 상황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테라스 난간을 의지하여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그를 먼저 발견한 것은 그와 같은 세계에 속한 베인 쪽이었다.


  “저런! 라이트우드 씨, 괜찮아요?”


  ‘라이트우드 씨’? 그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은 잔뜩 들떠 있던 매그너스의 표정을 심각한 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클레리에게 듣기로는 당시 베인은 그녀를 돕기 위해 어떤 파티장을 찾았고, 그곳에는 그 세계의 알렉 역시 있었다고 했다. 자신과 알렉이 처음 만난 곳도 다운월더 파티가 열리고 있던 판데모니움이었고, 단지 그 정도의 유사점만으로 매그너스는 베인과 그의 '라이트우드 씨'가 그 날의 파티에서 서로에게 빠져들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결코 논리적이지 않았으나, 틀렸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매그너스는 자신과 알렉의 관계가 발전해온 속도를 평행 세계의 그들에게 똑같이 대입했고, 지금쯤이라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숨기는 것이 전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다시 말해, 비록 먼데인이나 다름없는 알렉일지라도 자신의 연인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월록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라이트우드 씨’라는 호칭은 매그너스의 생각과 현실의 불일치를 의미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렇게나 생생한 걸 보니 꿈은 아닌 것 같고……. 여기가 어디죠? 저 남자는 또 누구에요? 아는 사이인가요?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저 남자 이름도 매그너스 베인인 것 같던데.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당신과 똑같이 생긴 걸 보면 혹시 가족이라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베인을 향해 질문을 쏟아내던 ‘베인의 라이트우드’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화려하게 꾸민, 그가 아는 사람과 똑같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또 한 명의 매그너스 베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제야 고양이의 눈을 닮은 금색 눈동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매우 기묘하게 생긴 그 눈동자가 희귀한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매그너스는 그런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 있었고, 베인은 불안한 얼굴로 그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좋아. 계속 여기 서 있어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일단 들어와.”


  매그너스는 습관적으로 마법을 써서 흐트러진 카우치를 정리하려다가 아직 제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법 없이 직접 손을 움직여 특별한 손님들이 앉을 자리를 정돈해 주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자, 매그너스도 맞은편에 놓인 자신의 1인용 카우치에 앉았다. 한숨을 내쉰 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또 다른 자신을 향한 사죄의 말이었다.


  “우선, 베인, 정말 미안해. 이렇게 큰 마법을 쓰는 게 워낙 오랜만이기도 하고……. 내가 사정이 좀 있어서 마력을 전부 잃었다가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 그래서 섬세하게 조절하지 못한 것 같아. 난 그냥 널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알렉, 아니, 라이트우드 군까지 소환될 줄은 몰랐어.”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두 손을 꼼지락거리던 베인이 이번에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매그너스를 노려보았다.


  “그냥 실수였다고? 아니, 애초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를 여기로 소환한 것부터가 문제 아니야? 날 만나보고 싶었다면 직접 차원을 넘어올 것이지, 왜 멋대로 사람을 불러들여? 조금 전까지 난……!”


  매그너스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그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다소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왜, 알잖아. 나 가끔 마법으로 사고치는 거. 한동안은 얌전하게 지내긴 했지만. 아무튼, 이번에도 그냥 그런 거야.”
  “난 한 번도 그래본 적 없어.”


  매그너스를 대하는 베인의 태도에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매그너스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생각이 짧았던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펜타그램 안으로 소환된 데몬들이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이 떠올랐다. 몇 백 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란 게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설명을 좀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너의…… 라이트우드 군에게. 내가 얘기할 수도 있지만, 직접 하는 게 낫지 않겠어?”


  매그너스가 베인의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베인의 얼굴 위에서 순식간에 성난 빛이 가라앉고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는 잠시간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트우드 씨. 당신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은, 나에 대한 중요한 사실이 몇 가지 있어요. 이런 식으로 준비도 없이 이런 얘기를 듣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이거에요. ‘모든 전설은 사실이에요’. 천사, 악마, 요정, 웨어울프, 뱀파이어……, 그리고 네피림과 월록. 그들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어요. 그것도 바로 이 자리에.”


  베인은 차마 라이트우드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랜 옛날부터 먼데인들을 괴롭혀온 데몬과 천사의 힘을 물려받아 먼데인을 지켜온 섀도우 헌터, 그리고 월록을 포함한 다운월더들이 뒤섞여 전쟁이 끊이지 않던 섀도우 월드. 섀도우 헌터의 승리로 막을 내린 전쟁.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지닌 힘을 잊은 네피림과 먼데인인 척 세상에 녹아든 다운월더들……. 베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라이트우드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와 여동생의 책장을 채우고 있던 판타지 소설들을 떠올렸다. 사실 그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브루클린 한 가운데에 위치한 누군가의 로프트로 이동하고, 그 누군가는 자신과 함께 있던 사람과 똑같이 생긴 것도 모자라 같은 이름을 가졌으며, 그들이 한 입으로 마법이니 뭐니 떠들어대고 있으니 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모두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만, 라이트우드 가문은 네피림 사회에서도 유명한 가문이었어요. 그리고 저쪽에 앉아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나는……, 나는 월록이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라이트우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발 물러섰다. 그 순간, 베인이 미세하게 어깨를 떨며 긴장하는 것을, 그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월록은 악마의 자식이며 존재 자체가 저주인 이들이었다. 그런데 순수하고 맑은 얼굴로 예쁘게 미소 짓던 이 남자가 월록이라니.


  “월록은 불멸이고, 마법을 쓸 수 있어요. 전설 속 이야기와 똑같죠. 이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차원 너머의 평행세계에요. 저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이 세계의 매그너스 베인이고, 그가 마법으로 우리를 소환했어요. 우리가 살던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직 섀도우 헌터와 데몬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예전에 이곳에서 온 클레리 양을 만난 적이 있었거든요. 그녀 덕에 당신을 만날 수 있었고요.”


  라이트우드의 시선이 매그너스에게로 향했다. 매그너스는 어깨를 으쓱 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황금색의 홍채와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달리 보였다. 말간 얼굴의 베인과 저 매그너스가 정말로 서로 다른 차원에 사는 같은 사람이라면, 그가 월록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그너스의 눈은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난 지금 저주받은 악마의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셈이군요…….”


  라이트우드는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별 생각 없이 중얼거린 것뿐이었으나, 두 월록은 어김없이 상처를 받았다. 이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는 매그너스는 조용히 심호흡을 하는 정도였으나, 베인은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라이트우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매그너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당신들이 월록이라고 해도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 내 말이 맞지? 그러니까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줘. 지금 당장!”


  차분하게 말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라이트우드가 자신의 알렉과 똑같은 얼굴로 가련한 감정을 내비치자, 매그너스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베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러나 라이트우드는 흠칫 어깨를 떨며 얼굴을 뒤로 물렸고, 매그너스도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물론 돌려보내줘야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돼. 힘 조절에 실패해서 마력이 바닥났거든.”


  매그너스가 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월록 표식이 가려지며 그의 두 눈동자가 지극히 평범한 모양으로 변했다. 마법에 휩싸여 차원을 넘어오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마법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라이트우드는 잠시 그것에 매혹되어 웃음을 지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월록이 악마의 자식이고 저주받은 존재라는 것을 가까스로 상기하며 얼굴을 굳혔다.


  “지금은 이 정도 마법이 전부야. 이만큼이나 마력을 썼으니 전부 회복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릴 거고.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이곳에 매그너스 베인은 나뿐만이 아니니까, 당장은 힘들지만 하루 이틀쯤 지나서 어느 정도 회복되면 나머지는 저쪽 베인의 마력을 받아서 보내줄게. 그러니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어.”


  매그너스는 한껏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바로 그 순간, 로프트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것은 지난 사흘간 머리카락 한 올 보여주지 않던 매그너스의 알렉이었다.







***







  매그너스가 쓸쓸함을 털어내려 무언가 즐거운 것을 찾고 있을 무렵, 알렉은 여동생 이자벨과 마주 앉아 있었다. 뉴욕 인스티튜트를 책임지고 있는 라이트우드 남매였지만 그들의 대화 주제는 매우 사적인 것으로, 이자벨이 알렉에게 사흘간 스테미너 룬까지 써가면서 잠도 자지 않고 일에만 매달린 이유를 집요하게 추궁한 것이 발단이었다. 알렉은 결국 매그너스와의 일을 전부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알렉. 매그너스 말이 맞아. 매그너스가 정말 아쉬운 게 조금도 없어서 그랬겠어? 오빠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거라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매그너스가 오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이월록 자리를 내놓겠다고 하면 기쁠 것 같아?”


  알렉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매그너스가 하이월록으로서 자신의 종족을 돌보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그 자리를 잃었을 때 얼마나 상심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지, 나는 섀도우 헌터를 그만 두겠다는 게 아니잖아. 난 헌터 일을 사랑해. 그저 더 높은 지위와 넘쳐나는 업무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뜻이야.”


  이번에는 이자벨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척 하지 마. 집안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클레이브는 계속 우리에게 중책을 맡기려 할 거야. 우리가 그걸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할 거고. 계속 사적인 이유로 요청을 거절한다면 나중에는 요청이 아니라 명령을 하겠지. 클레이브가 참다못해 내린 명령에 불복하면 어떻게 될까? 충성심을 의심받고, 최악의 경우에는 더 이상 섀도우 헌터로 살아갈 수 없을 지도 몰라. 지난달에 의회랑 씨름하는 동안 다 했던 얘기잖아!”


  조목조목 맞는 말만 하는 이자벨 앞에, 알렉이 고개를 숙였다. 가벼운 애정으로 다른 사람과 교제했던 경험조차 없었던 알렉이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게 된 상대가 곧 그의 일생의 사랑이었으니, 그 사랑이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걸어 주어야 했고, 그것이 이 기관차의 차장인 매그너스였던 것뿐이었다.


  “고집부리지 말고 오늘은 매그너스한테 가. 남은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있어. 하여간 오빠는 매그너스 앞에선 어린 애가 된다니까.”


  이자벨이 몇 마디 더 덧붙였고, 알렉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고쳐먹자 한 시라도 빨리 매그너스와 화해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그는 클레리에게 포탈을 열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러나 클레리의 포탈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매그너스의 로프트가 아니라 그 근방의 골목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꽤 거리를 단축하기는 했지만 포탈이 원하는 위치에서 열리지 않은 것은 무언가 이상했다. 매그너스의 로프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알렉은 그 원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척 보아도 매그너스가 친 것이 분명한 강력한 보호막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매그너스!!”


  알렉은 민첩 룬까지 발동시키고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프트를 둘러싸고 있던 방어막이 사라졌고, 알렉의 발이 좀 더 빨라졌다. 발렌타인 때문에, 그리고 릴리스와 조나단 때문에 이미 여러 번 매그너스를 잃을 뻔했던 적이 있었던 그는 혹시나 또다시 연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철없이 그를 등지고 나왔던 사흘 전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매그너스!!”


  그러나 로프트에 도착한 알렉이 마주한 것은 매우 뜻밖의 장면이었다. 카우치에 앉은 매그너스 앞에는 어떤 남자가 무릎을 굽힌 채 그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매그너스와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을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


  매그너스는 알렉을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웃으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알렉은 다른 두 사람을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한 팔을 뻗어 매그너스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때마침 매그너스의 앞에 앉아 있던 그 남자, 다른 차원에서 온 알렉산더 라이트우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그를 보고 알렉은 더욱 경계하며 매그너스를 좀 더 단단히 안았다.


  “데몬인가? 내 모습을 하고 매그너스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알렉이 사나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오, 내 천사.”


  매그너스가 알렉의 단단한 허리를 끌어안더니 흥분한 그를 달래듯 너른 어깨와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괜찮아. 저 사람은 데몬이 아니라 너야, 알렉산더. 평행 세계에서 온 알렉산더 라이트우드지. 더 이상 섀도우 헌터가 존재하지 않는 평행 세계에 대해, 비스킷에게 들었잖아.”


  알렉은 자신의 어깨를 훑는 매그너스의 손을 붙잡고 그와 눈을 맞췄다. 그 눈을 보자 금세 긴장이 풀렸다.


  “그럼 저 쪽도…….”


  다소 진정이 된 듯한 표정으로 베인 쪽을 가리키는 알렉에게, 매그너스는 좀 더 예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그너스 베인이지.”


  데몬이 아니라니 안심은 되었지만, 알렉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그너스의 손끝이 그런 알렉의 볼을 가볍게 스쳤다. 그 손짓과 더불어 여전히 매그너스의 허리에 단단히 감겨있는 알렉의 팔까지, 다정함이 넘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이트우드의 시선이 잠시 베인에게로 향했다. 베인은 얼굴을 붉힌 채 알렉과 매그너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없는 집은 영 허전해서 말야. 재미있는 말동무가 되어줄 것 같아서 불렀는데,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참아볼걸 그랬네.”


  매그너스는 그렇게 말하며 알렉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베인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고, 라이트우드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에게 예쁘게 입을 맞춘 매그너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알렉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니까, 나 대신 다른 차원의 나를 불렀다고?”


  알렉이 다시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라이트우드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매그너스는 양 손으로 알렉의 얼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하고는 짐짓 단호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알렉산더. 저쪽에 있는 라이트우드가 너랑 똑같이 생기긴 했지만 ‘나의’ 알렉산더는 아니야. 내가 원한 말동무는 또 다른 나였어. 두 사람을 다 소환해 버린 건……, 그냥 실수였고.”


  매그너스의 해명에도 알렉은 좀처럼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다시 시선을 옮겨 라이트우드를 노려보았다. 그 날카로운 눈빛을 받아내던 라이트우드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했다. 알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가 우습지?”


  그는 금방이라도 또 다른 자신에게 싸움을 걸 기세였다. 매그너스는 속으로 자신의 모자란 인내심을 탓하며 난처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라이트우드도 기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다는 듯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삐딱하게 섰다.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감싸는지 모르겠군. 그래봤자 악마의 자식, 저주받은 존재인데.”
  “뭐?”


  알렉은 매그너스를 품에서 놓아주고는 주먹을 말아 쥔 채 라이트우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라이트우드도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주먹을 쥐었다. 혈통으로만 보면 두 사람 다 네피림이긴 했지만 살아온 인생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싸움이 붙으면 결과는 뻔했다. 매그너스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뜻하지 않게 차원을 넘어온 라이트우드가 자신의 연인에게 폭행까지 당하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알렉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베인이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서는 것이 더 빨랐다.


  “라이트우드 씨는 잘못 없어요. 당신은 섀도우 헌터인지 몰라도 라이트우드 씨는 이제껏 먼데인으로 살아왔어요. 섀도우 월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먼데인에게 월록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악마의 자식이고, 저주받은 존재가 맞는 걸요.”


  베인은 알렉과 마주 서서 분명한 목소리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라이트우드를 변호했다. 그러나 자신을 감싸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라이트우드는 사나운 표정으로 이를 뿌득 갈았다.


  “참 뻔뻔하네요, 매그너스. 날 속였으면서.”


  라이트우드의 말에 베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갈 곳을 잃은 베인의 눈동자가 금색 고양이 눈이 되었다가 다시 평범한 갈색 눈으로 돌아왔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그것을 통해 그의 불안정한 상태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소…, 속인 적 없어요. 얘기하려고 했어요. 때가 되면 내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당신에게 전부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베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비웃음이었다. 알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매그너스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매그너스에게도 이 상황을 수습할 묘안은 없는 모양이었다. 베인은 머뭇거리며 라이트우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등을 보인 채로는 진심을 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라이트우드의 두 눈을 마주한 순간,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눈동자에 서려있는 것은 배신감과 두려움이었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여기에는 더 이상 못 있겠어. 돌아갈 수 있게 되면 불러. 그 마법을 쓰면 내가 어디에 있든 이곳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겠지.”


  제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어버린 베인의 곁을 큰 보폭으로 지나친 라이트우드는 매그너스에게 그렇게 말한 뒤, 망설임 없이 로프트를 나섰다. 베인은 그대로 주저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알렉은 자신의 연인과 같은 얼굴로 울고 있는 그를 외면하지 못하고 곁에 앉아 풀죽은 등을 감싸 안으며 말없이 위로를 건넸다. 그럴수록 베인은 더 서럽게 울었고, 곧 자연스럽게 알렉의 품에 휘청이는 몸을 기대기까지 했다. 그 행동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매그너스는 아주 약간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베인도, 라이트우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라이트우드의 눈가에 맺힌 배신감과 베인의 눈물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과 알렉처럼 사랑을 나누며 행복해질 수 있었던 이들이,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로 그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매그너스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는 알렉의 품에서 울고 있는 베인에게 다가갔다.


  “정말 미안해, 베인. 나 때문이야. 내가 괜한 짓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무슨 수를 쓰든, 내가 전부 바로잡을게. 내 잘못이니까 내가 책임질게.”


  알렉은 한 손으로는 여전히 베인의 등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 매그너스의 손을 붙잡았다.


  “당신 잘못만은 아니지.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내가 철없게 굴지 않았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테니까. 같이 해결하자. 할 수 있을 거야.”


  알렉의 다정한 목소리에 매그너스는 자꾸만 위로 향하려는 입 꼬리를 내리 누르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실연을 당해 울고 있는 사람 앞에서 웃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어.”


  한참 만에 눈물을 멈춘 베인이 알렉의 품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악마의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먼데인이 어디 있겠어. 친부모도 감당 못할 일인데.”


  체념을 담은 목소리에, 매그너스는 자신과 베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같거나 최소한 비슷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세계에서 발렌타인과 조슬린은 다정한 부부였다는데, 어째서 매그너스 베인의 어린 시절은 이곳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을까. 매그너스가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우울한 기분에 빠져든 두 명의 매그너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알렉은 이내 자신의 매그너스를 끌어당겨 안았다. 매그너스는 눈을 감고 알렉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베인은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또다시 알렉의 눈에 밟혔다.


  “어쨌든 그 녀석도 나라면, 조금 전의 그 모습은 진심이 아닐지도 몰라요. 지금은 그저 놀라서……,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죠. 그 역시 알렉산더 라이트우드라면 매그너스 베인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어요.”


  베인을 달래기 위해 한 말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알렉의 진심이었기에, 매그너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는 여전히 알렉에게 기댄 채로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어린 연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알렉의 시선은 그가 아닌 베인에게로 향해 있었다.


  “알렉산더.”


  매그너스는 그것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한 손으로 알렉의 볼을 감싸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도록 했다.


  “내 천사는 언제나 나에게 감동을 준다니까.”


  알렉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매그너스와 시선을 맞추며 그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어떤 날을 떠올렸다. 루크를 치료하려다가 마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는 바람에 자신에게 힘을 빌리고도 힘없이 쓰러지던 그 날의 매그너스를.


  ‘그러고 보니 이 정도면 마력을 많이 썼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알렉이 매그너스에게 괜찮은 건지 물어보려는 순간, 매그너스가 그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타이밍을 놓친 질문에 답을 하자면, 매그너스는 아직도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고, 고양이 눈을 가리기 위한 글래머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신도 모르게 꺼낸 달콤한 말은 마력보다 강력하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지. 내가 너의 라이트우드를 데리고 올게.”


  매그너스는 자신을 걱정하는 연인의 커다란 두 눈을 향해 문제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내가 다녀올게, 알렉산더. 밖에 있는 라이트우드는 네피림의 혈통이긴 하지만 먼데인이야. 거친 헌터보다는 섬세한 마법사가 가는 게 나아.”


  허리를 깊이 숙여 자신의 천사에게 입을 맞추고 또 다른 자신의 어깨를 한 번 꼭 잡았다가 놓아준 뒤, 매그너스는 뒤로 돌아서서 포탈을 열었다. 차원을 넘어오게 만든 강력한 마법이 남긴 흔적인지, 라이트우드에게서는 아주 미약하게 ‘매그너스 베인’의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고, 그 덕에 어느 곳을 향해 포탈을 열어야 할 지 알 수 있었다. 매그너스는 마지막으로 알렉을 돌아보며 윙크를 하고는 포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그너스가 포탈 속으로 사라지고, 그 포탈마저 사라지자, 베인은 다시 훌쩍이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괜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알렉의 눈에 매그너스의 카우치가 보였다. 알렉은 베인을 편하게 앉히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베인은 알렉의 부축을 받으며 몇 걸음 걸어가 조금 전까지 매그너스가 앉아있던 1인용 카우치에 풀썩 앉았다. 알렉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눈물 짓던 매그너스를 떠올리며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보다 가까이서 제대로 마주한 베인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장기가 없다는 점만 빼면 그 때의 매그너스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알렉의 손이 그런 베인의 얼굴을 감싸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베인이 떨구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알렉을 바라보았다. 안쓰러움이 가득한 알렉의 눈을 마주하자, 베인은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 정확히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인 것이다.



  “이 세계의 나는 사랑받고 있군요. 당신에게.”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였다.


  “당신도 그렇게 될 거에요, 매ㄱ……, 베인 씨.”


  알렉이 ‘베인 씨’라는 호칭을 선택하자, 베인의 입 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이 마치 이 순간의 자신과 라이트우드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베인은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망설이며 아직까지도 ‘라이트우드 씨’라는 호칭을 고집하고 있었으나, 라이트우드는 첫 만남 이후로 줄곧 베인을 이름으로 불러왔던 것이다. 물론, 알렉이 그를 ‘베인 씨’라고 부른 것은 그의 연인과 구분하기 위해서였지만. 다시 한 번, 베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괜찮아요. 매그너스가 해결해 줄 거예요. 그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을 겪는 어린 다운월더를 상담해주고 섀도우 월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좋아해요. 당신의 알렉도 그 다운월더들과 비슷한 상황이니까, 분명 매그너스가 해결할 수 있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알렉의 다정한 위로는 베인으로 하여금 불과 몇 십 분 전까지 자신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던 라이트우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베인의 마음을 달래는 데에 꽤 효과적이었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베인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알렉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을 수는 있겠죠. 어쨌든 서로 너무나 다르니까요. 그건 나랑 매그너스도 마찬가지고, 우리에게 그랬듯 두 사람에게도 ‘다름’은 큰 문제가 아닐 거예요. 어쩌면 우리보다는 나은 상황인지도 몰라요. 우리 사이가 가장 크게 흔들렸을 때, 우린 다운월드를 모조리 말살시키려는 적을 상대하는 중이었거든요. 서로만을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나빴죠. 내가 부족해서 매그너스가 고생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전부 극복해냈고, 지금은……, 전혀 다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이 관계를 지키겠다는 마음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요. 알렉산더 라이트우드와 매그너스 베인이라면 어떤 세계에서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어지는 격려에 마침내 베인의 눈물이 멈췄다. 알렉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었고, 베인이 그를 따라 웃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알렉이 별안간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돌려 베인을 등진 그의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매그너스와 같은 듯 다른 베인의 말간 미소에 요동치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는 탓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알렉은 아무리 똑같이 생겼다고 해도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자신의 연인이 아님을 상기하며 로프트로 들어서는 자신을 두 팔 벌려 맞아주던 매그너스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매그너스와 라이트우드가 시선을 맞추고 있는 장면까지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 때, 매그너스도 그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알렉의 마음속에 또 다른 자신을 향한 질투심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저……, 괜찮으세요?”


  베인이 그렇게 물으며 알렉의 팔을 살며시 붙잡았다. 아무런 의도도 없는 손길이었으나 알렉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아무 문제없어요. 그냥 요즘 좀……. 일이 많아서, 피곤하네요. 그, 저는……, 그러니까 저는 방에서 좀 쉬고 있을게요.”


  알렉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서둘러 침실로 향했다. 베인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은 다급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있는 베인을 다시 찾아야 했다.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에서 경보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몬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지금, 먼데인으로 살아온 라이트우드와 마력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임이 분명한 매그너스는 데몬이 돌아다니는 뉴욕 거리 어딘가에 있었다.


  “베인 씨, 포탈 좀 열어줘요. 매그너스를 찾아야 해요.”







***







  포탈을 빠져나오자마자, 매그너스는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끼며 무언가 잡고 버틸 것을 찾기 위해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소진된 마력이 채 회복되지 않아 포탈 하나 여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탓이었다. 손끝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꼴사납게 쓰러지기 직전,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매그너스를 붙잡아 그를 바로 세워 주었다. 몸이 바로 서자 어지러움도 다소 가라앉았다.


  “마이아!”


  자신을 붙잡아 준 사람이 헌터스문의 아름다운 바텐더라는 것을 확인한 매그너스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포탈은 매그너스를 헌터스문의 뒷문 앞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그가 포탈을 막 빠져나왔을 때, 때마침 마이아는 잔뜩 쌓인 빈 술병을 내어놓고 다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어디 안 좋아요?”


  마이아의 물음에 매그너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웃었다. 브루클린의 하이월록이 포탈을 빠져나오며 힘없이 휘청거리는 꼴은 결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 하이월록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면 답을 얻어내는 것은 그의 연인인 섀도우 헌터조차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 왔어요. 빨리 들어와요.”


  그래서 마이아는 거듭 질문을 하는 대신, 매그너스의 손목을 잡아 끌며 가게 안으로 향했다. 매그너스가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는 것에 대해 집히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이아에게 이끌려 뉴욕 지역의 어린 웨어울프들이 한데 모여 파티를 벌이고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선 매그너스는 한쪽 구석에서 벌써 위스키를 반병이나 비운 라이트우드를 발견했다.


  “꼭 다른 사람 같아요. 날 모르는 척 하고, 술도 잘 못하면서 저렇게나 마셔대고.”


  마이아는 그를 자신이 아는 알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라……. 하긴, 알렉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뭐가 됐든 내가 해결할게. 단지 하나만 부탁하자면, 저 알렉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지 말아줘. 술은 이미 있으니 더 필요하진 않을 것 같고.”


  역시나 그는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치 빠른 마이아는 더 묻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매그너스 몫으로 잔을 하나 더 가져다주었다.


  “같이 마실까?”


  매그너스가 빈 잔을 라이트우드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잔을 쥔 손가락에 끼워진 각각 M, B라고 새겨진 두 개의 반지를 본 라이트우드는 다소 취기가 오른 눈을 들어 손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의외로 순순히 술을 따라주었다. 매그너스는 빙긋 웃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합석을 허락한 것은 대화를 나눌 의사가 있다는 뜻이니 오늘의 상담은 시작이 좋았다. 라이트우드는 한동안 말없이 자신의 술잔만 만지작거렸고, 매그너스는 재촉하지 않고 그가 먼저 입을 떼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대단하네. 어디로 간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도 이렇게 금방 찾아내고.”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게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내 라이트우드의 입이 열렸다.


  “강한 마법은 흔적이 남거든. 그걸 쫓아왔지.”


  매그너스는 가볍게 답하며 그제야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었다.


  “돌려 말하기 귀찮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라이트우드 군. 베인을 어떻게 생각해?”


  라이트우드는 미간을 좁히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하는 대신 술을 들이켰다. 탁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놓은 그는 다시 얼마간 답을 망설였다. 무어라 답하면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갖고 싶은 사람.”


  숙고 끝에 나온 답은 꽤 희망적이었다.


  “여전히?”


  매그너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이트우드의 입술 사이로 무거운 한숨이 빠져나왔다.


  “모르겠어…….”
  “그가 저주받은 악마의 자식이기 때문에?”


  거듭된 질문에 라이트우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월록이라는 사실에 놀란 건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야. 단지……, 이제껏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던 사람은 많았지만,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진심이었던 적은 없었어.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랐지. 운명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생각했어.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가 가진 감정까지도 전부 거짓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서……. 왜, 소설에 자주 나오잖아. 인간을 홀리는 악마 이야기.”


  매그너스는 자신을 속였다며 베인을 비웃던 로프트에서의 라이트우드를 떠올렸다. 가만 보니 ‘속였다’는 말은 단지 베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겨왔던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지 깨달은 매그너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야기를 또 다른 매그너스 베인에게 하고 있다는 것부터, 이미 라이트우드는 답을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갑자기 덮쳐온 믿을 수 없는 사건과 이야기에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리라.


  “마법으로 마음을 얻는 게 가능했다면 내가 알렉산더의 결혼식에 갈 일은 없었을걸.”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매그너스의 목소리에 라이트우드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커다란 두 눈에 호기심이 비치고 있었다.


  “나와 알렉산더의 얘기를 좀 해줄까?”


  매그너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묻자, 라이트우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그너스의 이야기는 불멸자로서 수도 없이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자신의 삶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상실을 또다시 겪는 것이 두려워 100년이 넘도록 마음을 닫고 지냈던 지난 세월에서부터 시작되어 마치 운명처럼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두드린 알렉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라이트우드는 저도 모르게 베인의 삶도 같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알렉산더 역시 나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그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거든. 하지만 슬프게도 그 때의 내 천사는 자신의 삶을 사는 법을 몰랐어. 섀도우 헌터 사회는 군대와 다름없고, 그 때까지 알렉산더는 오로지 헌터로서, 그리고 라이트우드 가의 장남으로서 살아왔을 뿐이었지. 나중에야 안 거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와 사귀기 전까지는 데이트 한 번 해본 적 없었다고 하더라고.”


  매그너스가 그런 알렉에게 갖가지 저속한 농담으로 작업을 걸었던 일들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하자, 라이트우드는 참지 못하고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베인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라이트우드 역시 베인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다른 부분이라면, 매그너스의 알렉산더는 그 농담들 중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라이트우드의 베인은 전부 알아듣고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는 점이었다. 라이트우드는 참지 못하고 매그너스의 말을 끊고 끼어들어 자신과 베인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얼굴은 앳되어 보이지만 분위기는 아무리 봐도 나보다 연상인데 야한 농담 몇 번 했다고 얼굴을 붉히는 걸 보고 처음에는 순진한 척 내숭을 떠는 건가 했어. 시간이 지나면서 결코 내숭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꽤나 박식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만큼이나 폭넓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니 뭐든 모르는 게 없겠다 싶더라고.”


  조금 전까지는 베인 때문에 얼굴 가득 짙은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면서, 이번에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라이트우드를 보며 매그너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알렉의 말처럼, 라이트우드는 그저 조금 놀랐을 뿐, 베인이 인간이 아닌 월록이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그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베인이 저질 농담을 포함해서 그렇게도 폭넓은 지식을 갖게 된 것은 수 세기를 살아온 월록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직 하면 안 되겠지만.


  “어쨌든, 난 알렉산더가 자신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매그너스는 앞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때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말했듯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하라든가 하는 식으로 좀 돌려서 말했는데……. 그는 내 조언을 받아들여서 라이트우드 가에 도움이 될 만한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결정을 내려버렸지. 그건 결국 라이트우드 가의 장남으로서의 결정일 뿐인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를 봐!”


  매그너스의 이야기는 알렉과 리디아의 결혼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 결혼식 직전까지도 매그너스는 알렉에게 몇 번이나 정말 원해서 하는 결혼이냐고 물었고, 알렉 역시 몇 번이고 그렇다고 답했다. 매그너스에게 알렉은 100년 넘게 닫아놓았던 마음을 열어준 사람이었지만, 알렉이 원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그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둘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 때, 알렉산더를 포기했었어. 물론, 흔히 사랑의 묘약이라고 부르는 포션을 만들 줄 모르는 건 아니야. 심지어 내 포션은 효과가 아주 좋은 편이지. 하지만 약이라는 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언젠가 약효가 떨어지기 마련이야. 믿을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마법이나 포션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는 월록은 없어. 그건 더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는 그레이터 데몬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잠시 상대를 매혹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때뿐이라고.”


  다시금 생각해보면 알렉의 결혼식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서로와의 관계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탓에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있자니 매그너스의 얼굴 위로 그 날의 감정들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 얼굴은 라이트우드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전부 진실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라이트우드 녀석에게 아내가 따로 있을 것 같진 않았는데.”


  결말을 묻는 목소리에, 잠시 감상에 젖었던 매그너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내 오랜 친구가 목숨을 잃었어. 나와는 수 세기 동안 우정을 나눈 월록이었는데……. 아까 말했지? 강한 마법은 흔적이 남는다고. 그것과 비슷하게, 월록이 오랜 시간 지니고 있던 물건에는 그의 마력이 남아서 죽은 뒤에도 그것들을 통해서 남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 그는 죽어서까지도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 그에게서 내가 알렉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들었어. 나는 그의 마지막 조언을 무시할 수 없었고, 무작정 결혼식장에 찾아갔어. 그리고…….”


  매그너스의 얼굴에 잠시간 떠올랐던 슬픔이 서서히 사라지고 행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알렉이 내게 다가와서……, 키스했어. 그 때부터 시작된 거야, 우리는.”


  라이트우드는 입을 떡 벌리고 큰 눈을 깜빡거렸다. 이런 급진적인 전개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수줍게 웃고 있는 매그너스를 보고 있으려니 라이트우드의 마음도 급해졌다. 그는 행복한 기억에 빠져서 양 볼에 옅은 홍조까지 띄우고 있는 매그너스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매그너스는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한 얼굴로 라이트우드를 쳐다보다가, 별안간 자신의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또 다시 글래머가 풀린 탓이었다.


  “차원을 넘나드는 마법도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네 로프트까지 가는 공간 이동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매그너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어. 그러니까 여기서 매그너스라는 건 너 말고―”
  “‘너의’ 매그너스 말이지? 설명 안 해도 잘 알아들었어.”


  매그너스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도록 얼굴 한쪽을 가리며 아주 살짝 고개를 들었다. 라이트우드를 바라보는 두 개의 황금색 눈동자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공간 이동……. 그래, 로프트로 포탈을 열면 한 걸음에 이동할 수 있긴 한데, 지금은 무리야. 마법이 조절이 안 돼.”


  애초에 마력을 거의 바닥까지 소진한 상태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데다가, 조금이나마 마력이 회복될 때마다 바로바로 다시 사용해버린 탓에 이제는 안정적으로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제대로 회복을 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로프트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 상태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줘.”


  매그너스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휴대폰을 꺼내 카타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전화를 걸려고 했다.


  쾅―


  굉음과 함께 가게 안을 채우고 있던 음악이 끊어졌고, 매그너스는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가게 뒤쪽 벽면이 처참하게 부서진 채였고, 그 잔해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으나, 매그너스는 그가 아이돌런―겉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지닌 데몬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라이트우드를 제외하면 손님들 중 먼데인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었으나, 바텐더 마이아 외에는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신참 웨어울프라는 것, 그리고 매그너스가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과 부서진 벽을 통해 아이돌런 서넛이 더 나타난 것까지, 결코 좋은 상황은 못 되었다. 마이아는 손님들을 가게 한쪽으로 모으고는 늑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데몬들을 향해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여기 있었네, 섀도우 헌터.”


  데몬 무리들 중 하나가 앞으로 한 발 나서더니 웨어울프 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라이트우드만을 쳐다보며 오싹하게 웃었다.


  “매그너스 베인이 함께 있는 걸 보니 라이트우드 놈이 확실해.”


  다른 데몬이 매그너스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월록,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엄청 약해졌는데……. 실수로 죽이지 않게 조심해. 저 놈이 잘못되면 우리도 죽은 목숨이니까.”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데몬들의 목표는 알렉산더 라이트우드 단 한 사람뿐인 듯했다. 정확히는 섀도우 헌터인 이 세계의 알렉이 그들의 목적이겠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온 라이트우드였다. 물론, 그런 사정을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터였다. 데몬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을 보고, 매그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이트우드의 앞에 섰다. 상태가 좋지 않아 마법으로 데몬들의 머리를 날려버릴 수는 없는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데몬들은 그의 몸에 흐르는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면서도 공격을 감행할 정도로 대범하지 못했다.


  “저 월록이……!”


  과연 아스모데우스의 것과 똑같은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한 적들은 충분한 수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하기를 망설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지옥의 군주라는 그의 지위가 이런 순간에는 제법 쓸 만하다고, 매그너스는 생각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공격해!”


  그러나 무리들 중 누군가의 외침에, 그들은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곧 선두에 서 있던 금발 남성 모습의 데몬이 매그너스에게 달려들었다. 매그너스는 어떻게든 방어 마법을 써보려고 하였으나 두 손에서는 주황빛 스파크만 일어날 뿐이었다. 그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챈 마이아가 데몬을 향해 몸을 날렸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금세 서너 명의 데몬들에게 포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돌런 특유의 네 갈래로 갈라진 흉측한 입에서 나온 촉수가 매그너스의 어깨를 관통하기기 직전, 가게 바깥에서부터 날아온 화살이 데몬의 머리에 깊숙이 박혔다.


  “알렉산더!”


  매그너스가 반가운 목소리로 화살의 주인을 불렀다. 알렉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시위를 당겨 세 개의 화살을 각각 다른 데몬의 머리에 명중시켰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강한 파동과 함께 마이아를 둘러싸고 있던 데몬들이 일순간에 바닥에 쓰러졌다. 그 뒤에는 두 손을 앞으로 뻗은 베인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나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닥을 나뒹구는 데몬들을 쳐다보았다.


  “괜찮아?”


  몇 개의 화살을 더 날린 뒤, 매그너스 곁으로 다가온 알렉이 그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매그너스는 눈꼬리를 접으며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알렉은 잠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도 잊은 채 바보처럼 웃어버렸다. 그 사이 알렉의 등 뒤에서는 데몬들이 베인의 공격에 쓰러져가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한 무리의 아이돌런이 있었건만 어느새 겨우 두 명만 간신히 멀쩡한 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들은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수장님, 저 놈들 도망가는데, 그냥 놔둬도 돼?”


  매그너스가 물었다. 알렉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매그너스의 입술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뉴욕에 섀도우 헌터가 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명령과 임무밖에 모르는데다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지려 하던, 불과 몇 달 전의 고지식한 알렉이 본다면 기절할 지도 모를 모습이었다. 그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연인을 힘껏 끌어안았다가 놓아주었다. 반면, 베인은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라이트우드가 몸을 일으켜 베인에게 다가갔다.


  “라, 라이트우드 씨…….”


  베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서로만 바라보던 알렉과 매그너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라이트우드는 한 발 다가서면 두 발 물러서고 마는 베인을 보며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거의 달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양 팔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이 월록이 아니라 악마라고 해도 난 아무 상관없어요. 단지 조금 오해를 했을 뿐이에요. 나도 이런 건 처음이라서, 이런 내가 나 스스로도 너무 낯설었거든요.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매그너스. 그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베인의 눈동자가 라이트우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랑해요.”


  베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란 두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하지만 강렬하게 진심을 외치는 라이트우드의 눈동자는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변함이 없었다. 베인의 떨리는 손이 라이트우드의 한쪽 뺨을 감싸자, 라이트우드가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베인의 손등을 덮었다. 뒤이어 언제 울음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얼굴을 한 베인이 라이트우드의 입술에 키스를 한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라이트우드 가의 장남이 다운월드의 난봉꾼으로 소문이 자자한 월록에게 키스하는 걸 목격한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척 봐도 숙맥인 저 베인이 먼저 키스를 할 줄이야!”


  매그너스가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고, 알렉은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오, 이런.”


  여전히 늑대 모습을 한 마이아가 매그너스에게 다가와 앞발로 그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매그너스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숙이자, 마이아는 수줍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베인과 라이트우드 쪽으로 턱짓을 했다.


  “음……. 약간의 사고가 있어서 다른 차원의 매그너스 베인과 알렉산더 라이트우드가 이쪽 세계로 넘어오게 됐거든.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게. 어서 돌아가서 잠을 자지 않으면 저들을 돌려보내줄 수 없을지도 몰라.”


  매그너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튕겨보았으나, 여전히 스파크만 튈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근심 가득한 하이월록의 한숨 소리에 마이아는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잠시 후,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확인한 베인과 라이트우드가 그들에게 다가왔고, 네 사람은 베인이 열어준 포탈을 타고 한 걸음에 로프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포탈에서 빠져나와 푹신한 러그를 밟는 순간, 매그너스는 전신에 힘이 빠지면서 눈앞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꼭 붙잡고 있던 알렉의 손이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아주지 않았으면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것이다.



  “괜찮아?”


  알렉은 드디어 한참 전부터 벼르고 있던 질문을 하는 데에 성공했다. 매그너스는 떨리는 눈꺼풀을 아예 내리 감아버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연인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런 꼴을 보인 이상 괜찮다는 말은 소용없었다. 그는 평소보다 체온이 높았고, 숨소리도 거칠었다. 마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도 특별히 앓았던 적은 없었기에, 알렉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일단 편히 앉혀요.”


  그 때, 베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렉은 그가 시키는 대로 매그너스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카우치에 앉았다.


  “힘을 너무 마구 써서 그래요. 거의 바닥까지 소진된 마력이 조금씩 회복될 때마다 또다시 곧바로 다 써버리는 걸 반복해서……, 쉽게 말하자면 몸 안에서 마력의 흐름이 꼬인 거죠.”


  베인은 설명을 하면서 매그너스의 이마로 손을 뻗었고, 그 손끝에서 안개를 닮은 하얀 빛이 퍼져 나왔다. 그의 마법은 매그너스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초침이 시계 위를 여덟 바퀴 정도 돌았을 때, 매그너스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지친 얼굴이었고, 몸에도 약간의 열이 남아 있었으나, 호흡이 정돈되어서 그런지 한결 나아보였다. 베인은 손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매그너스의 눈가에서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헌터스문에서부터 줄곧 글래머가 풀린 상태였던 황금색 눈동자가 지극히 평범한 갈색 눈동자로 바뀌었다. 매그너스가 고개를 돌려 베인을 바라보았다.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잖아.”


  다 안다는 듯한 말투에 매그너스는 괜스레 장난기가 동하여 힘이 다 빠진 와중에도 익살맞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알렉산더는 괜찮아. 내 천사는 이 눈을, 언제나 진심을 다해 아름답다고 말해주거든.”


  예상대로 베인은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그것을 놓칠 리 없는 라이트우드가 그에게 다가섰다.


  “당신도 같은 눈을 가지고 있나요? 보여줘요, 매그너스. 보고 싶어요.”


  라이트우드가 베인의 양 어깨를 붙잡고 기대감에 찬 눈을 반짝였다. 베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괜찮아요. 난 그 눈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물론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보석 같은 눈동자가 당신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어지는 달콤한 말에도 불구하고 잠시간 더 망설인 베인은 결국 글래머를 풀고 본래의 눈을 드러냈다. 라이트우드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어 베인의 얼굴을 감쌌다. 이번에는 라이트우드에 의해,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이에 질세라 알렉도 매그너스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된 커플의 수줍은 입맞춤보다는 훨씬 더 깊고 농밀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입술이 떨어졌을 때, 라이트우드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득의양양하게 미소 짓는 알렉을 보고 매그너스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알렉은 시무룩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나 피곤해. 눕고 싶어.”


  그런 연인이 귀여워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매그너스가 힘없는 손을 들어 알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다리 아래로 팔을 넣고 그를 번쩍 안아들었다. 매그너스의 양 팔이 자연스럽게 알렉의 목에 감겼다.


  “아아, 두 사람, 남는 방은 많으니까 돌아가기 전까지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서 쓰도록 해. 각자 하나씩 써도 되지만, 한 방을 같이 써도 상관없어.”


  침실 문이 닫히기 직전, 매그너스가 다른 두 사람을 향해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이 닫히자 두 커플은 각자 온전히 자신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온전한 둘만의 시간. 그것도 비로소 서로의 연인이 되기로 결정한 직후 처음으로 갖는 둘만의 시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베인은 순식간에 귓바퀴까지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술……이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마법의 여파로 엉망이 된 집 안은 여전히 어질러진 상태였고, 그 난장판 사이에 깨진 술병과 술잔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집에는 항상 술이 준비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베인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지금만큼은 이 로프트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쓸 수 있는 월록은 양 손을 활짝 펴고 팔을 어깨너비보다 좀 더 넓게 벌린 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곧 두 손에서 푸른빛이 흘러 나왔고, 그는 그것을 한데 모으더니 빠른 속도로 두 팔을 넓게 벌려, 집 안 곳곳으로 퍼뜨렸다. 넘어지고 부서졌던 가구와 집기들이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테이프를 뒤로 돌려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트우드는 그 광경이 신기한 듯 입을 벌린 채 말끔히 정리된 로프트를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그……, 이 집의 물건들을 몇 시간 전의 상태로 돌려놓은 거예요.”


  베인이 괜스레 뒷목을 문지르며 설명했다.


  “정말 멋져요, 매그너스.”


  라이트우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사랑스러운 연인의 볼에 입을 맞췄다. 본래의 색을 찾아가던 베인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이 세계의 나는 마티니를 즐겨 마시는 것 같네요. 우리도 한 잔씩 마실까요?”


  그는 차마 라이트우드를 바라보지 못하고 애매하게 고개를 돌린 채 손을 휘저어 두 개의 술잔에 마티니를 채웠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잔을 받아 든 라이트우드가 베인의 허리를 감싸고 그를 테라스로 이끌었다. 라이트우드는 난간에 팔을 괴고 기대어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건만,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베인과 나눈 두 번의 입맞춤뿐이었다. 베인은 수줍음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주제에 라이트우드의 곁에 딱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맞닿은 어깨로 전해지는 기분 좋은 떨림을 만끽하던 라이트우드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무슨 말 하려고 했어요? 여기로 오기 직전에, 그 공원에서요.”


  그저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베인은 긴장으로 온 몸을 굳혔다. 라이트우드가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의 코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가자, 베인의 손에서 마티니 잔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저런!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라이트우드는 당황한 듯 얼른 몸을 숙이며 베인의 발치에 흩어져 있는 유리 조각을 조심조심 줍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킨 소심한 월록은 손목을 살짝 흔들어 깨진 잔을 원래대로 돌려놓음과 동시에 연인의 손목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라이트우드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당신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전부 사실이에요.”


  베인의 진지한 낯빛에 라이트우드도 똑같이 진지한 얼굴로 그와 마주섰다.


  “옛 이야기에서 악마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월록이라는 존재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뜬금없는 물음에 라이트우드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바로 그 월록이에요. 이야기에서처럼 마법을 쓸 수 있고, 죽지도 않죠.”


  베인은 라이트우드의 눈앞에 손바닥을 활짝 펼쳐보였다. 베인이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그 손바닥 위에서 한데 뒤엉켜 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홀로그램 영상 같았다. 라이트우드는 이것이 차원을 넘어오기 전, 베인이 자신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인의 성격상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수십 번 고민했을 것이고, 혼자 수도 없이 연습했을 것이 분명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나는 항상 제자리에 멈춰 서서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져가는 걸 지켜봐야 했어요.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오랜 세월, 마음을 닫고 살아왔어요. 하지만 당신이 내 안의 무언가를 움직였죠.”


  잠시 말을 멈춘 베인의 눈동자가 빠르게 젖어들었다. 라이트우드는 두 손으로 그런 베인의 양 볼을 감쌌다.


  “당신만……, 당신만 괜찮다면, 나는 언젠가 그 고통을 다시 마주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라이트우드 씨. 죽음이 내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기 전까지, 당신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 줄 수 있나요? 이런 나를……, 계속 사랑해 줄 수 있나요……?”


  마지막 질문과 함께 베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라이트우드의 손에 닿았다. 라이트우드는 베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있는 힘껏 감싸 안았다. 베인의 눈물이 라이트우드의 셔츠를 적셨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베인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냥 고백만 하려고 했어요. 이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서 당신과 나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 사랑이 맞는지조차 헷갈렸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확신이 생기면 얘기하려고 준비했던 건데……. 여기 와서, 또 다른 나와 또 다른 당신을 보고 확신이 생겼어요.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눈빛은 우리가 서로를 볼 때하고 똑같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이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용기가 나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아요. 지금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 털어놓은 후에도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라이트우드 씨, 나는―”
  “매그너스.”


  라이트우드는 베인을 품에서 놓아주며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나는 죽어서도 당신만 사랑할 거예요. 불멸의 삶을 사는 당신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훗날 당신이 겪을 슬픔을 생각하면, 이런 내 생각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당신과 사랑을 나누는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고 싶어요. 남은 이야기들은 당신이 준비가 되면 그 때 하도록 해요. 나는 항상 준비하고 기다릴 테니까.”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연인의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해서 베인은 오랫동안 그의 품에 안겨 울며 웃었다.







***







  식기가 서로 부딪쳐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익숙한 목소리가 뒤섞여 매그너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더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뜨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알렉의 잘생긴 얼굴이 그를 반겼다. 누구 애인인지 참 잘 생겼다, 하고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그 잘생긴 애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동자에 잠기운이 조금도 비치지 않는 것을 보니 진작부터 깨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좋은 아침.”


  매그너스는 언제나처럼 인사를 건넸다. 알렉은 모닝키스로 인사를 대신했다.


  “좀 더 자.”


  알렉의 손끝이 거뭇해진 매그너스의 눈가를 스쳤다. 매그너스는 고개를 저었다.


  “휴식이 필요한 건 맞지만 무조건 잠만 자는 게 휴식은 아니지. 게다가 이미 평소에 비하면 꽤 늦잠을 잤는걸.”


  매그너스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그는 시침이 숫자 9의 조금 위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오, 이런. 나 때문에 수장님이 지각을 한 것 같은데.”


  그러나 정작 알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느긋한 몸짓으로 매그너스를 끌어안았다.


  “휴가야. 요 며칠 계속 일만 해대서 당장 남은 일이 많지 않기도 하고, 이지랑 제이스도 있으니까 사나흘 정도는 괜찮아. 당신이 힘을 전부 회복할 때까지 난 여기 있을 거야.”
  “알렉산더, 잠깐만.”


  알렉을 밀어내는 매그너스의 미간에는 옅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알렉은 매그너스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걱정 마. 혹시라도 반드시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인스티튜트로 돌아갈 거야. 지금 내게 주어진 임무도, 당신도 절대 놓지 않을 거야. 물론 도저히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정말로 아무리 찾아도 방법이 없다면, 결국 내 선택은 당신이 되겠지만…….”


  알렉이 매그너스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 철없는 소리 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도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매그너스는 팔을 뻗어 알렉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마음 가는대로 얘기하자면, 당연히 나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감정적으로만 행동해서는 안 되잖아. 우리의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이 지위를 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 며칠 전 아침에는 네가 이미 너무 감정적이어서,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 그런 점이 서운했던 거지? 미안해, 알렉산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나는 바보처럼 그 때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구나.”


  알렉은 고개를 저으며 매그너스를 품에서 놓아주고는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니야. 내가 어른스럽지 못했어. 홧김에 의회와 다시 얘기해봐야겠다고 했지만, 조금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 그냥 어리광을 부린 거야. 어째선지 자꾸만 네 앞에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


  매그너스는 제 이마를 짚고 헛웃음을 지었다.


  “오, 물론 그래도 되지. 다음부터는 네 어리광을 좀 더 충분히 받아주도록 노력할게.”


  그는 일부러 과장된 말투로 이야기하고는 어린 연인의 입술에 쪽, 입술 도장을 찍었다.


  “서로 사과는 충분히 한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 또 다른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보러 갈까?”


  손가락을 튕기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막 잠에서 깨어나 잔뜩 흐트러진 상태였던 매그너스의 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눈가에도 순식간에 짙은 아이라인과 핑크색이 조금 섞인 보라색 아이섀도, 반짝이는 글리터가 칠해졌다. 화장으로도 피로를 완벽하게 가릴 수는 없었으나, 손짓 한두 번으로 침실 문을 열고 이불을 정리하는 것까지, 언제나처럼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알렉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일상의 소음을 쫓아 침실을 나선 알렉과 매그너스가 마주한 것은 샐러드, 토스트, 샌드위치,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까지, 풍성한 아침 식사가 차려진 식탁이었다.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보았다가 식탁을 보았다가 했다.


  “안 그래도 깨워야 하나 고민했는데 일어났네?”


  명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식탁 위에 블루베리 잼을 올려놓은 사람은 베인이었다.


  “잘 맞춰 왔어. 커피도 이제 막 다 되었거든.”


  라이트우드가 이제 막 내린 제 잔의 커피를 가져와 식탁에 내려놓고는 베인과 나란히 섰다. 두 쌍의 커플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모양새가 되었다.


  “사흘 안에 조금이라도 마력을 더 회복하려면 잘 먹는 것도 중요하잖아. 앉아.”


  베인은 마치 자신이 집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매그너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매그너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식탁 앞에 앉았고, 얼떨떨한 표정의 알렉도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라이트우드와 베인은 서로 마주보며 웃더니 각자 또 다른 자신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앞에 앉은 이들의 시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서로의 접시에 샐러드를 덜어주고 토스트에 잼을 발라서 건네주며 두 사람만의 봄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 좋아 보이네.”


  매그너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과 알렉이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스의 표정이 왜 항상 구겨져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젯밤엔 한 침대에서 잔 거야?”


  부러 짓궂게 묻자, 베인이 순식간에 귓불까지 붉게 물들이며 손을 내저었다.


  “저…, 정말 잠만 잤어……!!”
  “한 침대를 쓰긴 했다는 거네. 넌 몇 백 살이나 먹었지만 라이트우드 군은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인데 그냥 잠만 잤다니, 너무한 거 아냐?”


  매그너스는 어깨를 으쓱 하며 여유롭게 베이컨을 입에 넣었다. 이제 막 시작한 커플을 앞에 두고 자신은 동거를 하고 있을 정도로 연인과 깊은 사이라는 것을 뽐내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 승리감이 가득한 것이 귀여워, 알렉은 순간 크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그리고 매그너스가 자신과의 관계를 다른 사람―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은 아니지만―에게 당당하게 자랑하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의 장난을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매그너스.”


  다정한 부름에 알렉 쪽으로 고개를 돌린 매그너스는 그의 손에 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자른 토스트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물게 장난기 넘치는 눈빛을 한 연인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매그너스의 입술이 가로로 좀 더 길게 찢어졌다.


  “오, 내 천사. 다정하기도 하지.”


  알렉이 토스트 조각을 매그너스의 입가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매그너스는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일부러 혀를 조금 더 내밀어 의도하지 않은 척 알렉의 손끝을 살짝 핥았다. 매그너스의 눈동자가 내내 베인을 향해 있는 것을 보고 그 정도의 행동은 충분히 예상했기에, 알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입가에 묻은 잼을 닦아주는 척 엄지손가락으로 매그너스의 입술을 쓸었다. 그러자 매그너스는 알렉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일부러 글래머를 풀어 보석 같은 눈동자를 드러내며 제 입술에 닿은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알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베인 쪽은 그보다 심해서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낯빛을 하고 있었다. 라이트우드는 제법이라는 듯 팔짱을 낀 채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지지 않겠다는 듯 샐러드에 들어있는 방울토마토를 집어서 베인의 입가로 가져갔다.


  “아, 아, 알렉……!”


  베인의 입에서 정말로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큰 소리가 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입가에 닿은 방울토마토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라이트우드 씨’가 아닌 ‘알렉’이라니. 하룻밤 사이 급속도로 거리감이 사라진 두 사람의 모습에 매그너스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그들이 마땅히 누렸어야 할 행복을 망쳤을까 하는 염려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었다. 알렉도 식탁 아래에서 매그너스의 손을 감싸 쥐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뒤, 매그너스는 아직 커피가 반 정도 남은 머그컵을 들고 카우치에 앉았다. 지난 며칠간 홀로 외롭게 지냈던 것과는 달리 오늘부터는 다시 알렉과 함께였고, 재미있는 손님들이 일으키는 기분 좋은 소란이 더해지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매그너스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까딱이며 아무렇게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알렉은 그의 곁에 앉아 이자벨과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대강 내용을 들어보니 지난밤에 헌터스문에 들이닥친 데몬들의 목적은 뉴욕 인스티튜트의 수장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도망친 이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던 클레리와 제이스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 모양이었다.


  “이거, 마셔 둬.”


  식사를 마친 직후, 뭘 하는지 잠시 보이지 않던 베인이 매그너스에게 다가와 푸른빛이 나는 액체가 담긴 손바닥만 한 병을 건넸다.


  “내가 해도 괜찮았는데. 고마워. 이 정도 양이면 남아 있던 재료를 거의 다 썼겠는걸.”


  매그너스가 병을 받아들자, 베인은 지난밤에 그랬던 것처럼 안개를 닮은 하얀 빛이 새어나오는 손을 그의 이마께에 대었다. 때마침 통화를 마친 알렉이 매그너스의 손에 들린 푸른색 액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력 회복을 도와주는 포션이야. 그냥 푹 쉬기만 해도 회복되긴 하지만 이걸 마시면 회복 속도가 빨라지지.”


  곧바로 매그너스의 설명이 뒤따랐다.


  “잠은 잘 잤나보네. 어젯밤보다는 마력이 많이 안정되었어.


  베인이 손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되도록 마법을 쓰지 않는 게 좋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베인은 아침부터 완벽하게 셋팅되어 있는 매그너스의 머리카락과 빈틈없는 화장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알렉도 잠에서 깨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마법으로 얼굴을 꾸미던 매그너스를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던 매그너스는 얼른 포션 병의 뚜껑을 열어 안에 든 것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뻔뻔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데몬들 때문에 난장판이 된 헌터스문은 고쳐줘야지. 뱀파이어를 위해 술잔에 피를 따라주는 가게는 흔치 않다고.”


  그 이야기에 베인이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헌터스문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내가 다녀올게. 넌 여기서 쉬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불안정해진 마력의 흐름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거야.”


  베인은 포탈 안으로 사라지고 포탈이 닫히자, 그 뒤에 가려져 있던 라이트우드의 모습이 비로소 알렉과 매그너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라이트우드는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른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트우드 군, 무슨 할 말이라도?”


  매그너스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클레리와 이야기할 때 종종 취하는 어른의 목소리였다. 매그너스의 태도가 자신을 대할 때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은 알렉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어젯밤, 잠시 동안 품었던 질투가 뿌리부터 뽑혀 나간 듯했다.


  “당신과 이야기 할 때의 매그너스는 어딘가 좀 달라보여서……. 당신이 곧 자기 자신이어서 그런 건지, 뭐랄까, 평소보다 편해 보여. 말을 하는 것도 좀 더 거침없고, 행동도 훨씬 적극적이고.”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보아, 라이트우드는 베인이 자신을 그렇게 대해주지 않는 것이 내심 서운한 모양이었다. 매그너스가 나지막이 웃었다.


  “이렇게나 진심인 상대는 처음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첫사랑인가 보네. 아마 베인은 너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대할걸? 내가 매그너스 베인이라서 다르게 대하는 게 아니라, 너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대하는 거지. 원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거든.”


  라이트우드에게 답을 해주면서, 그는 슬며시 알렉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 깍지를 끼워 잡았다.


  “그 사람을 보면 숨이 멎을 것 같고, 곁에 다가서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소름이 돋지.”


  알렉은 이전에 매그너스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더니,


  “지금도 그래.”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매그너스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그의 연인은 가끔 특별한 의도가 담기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표현으로 감동을 주곤 했다. 그 솔직함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매그너스는 알렉을 바라보며 예쁘게 웃었다. 그들 주변은 금세 두 사람만의 세상이 되어버렸고, 같은 공간에 있는 또 다른 한 명은 순식간에 잊혀졌다. 다행히도 때마침 다시 포탈이 열리며 베인이 로프트로 돌아왔고, 라이트우드는 반가운 마음에 그를 냅다 끌어안았다.







***







  매그너스는 베인이 시키는 대로 이틀을 꼬박 로프트 안에서 보냈지만, 헌터스문에서 목격된 두 명의 매그너스 베인과 두 명의 알렉산더 라이트우드에 대한 이야기는 뉴욕 인스티튜트와 다운월드 이곳저곳을 신나게 돌아다닌 모양이었다. 그 날의 목격자였던 어린 웨어울프들이 그 시발점으로, 매그너스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온 사람 중 첫 번째는 루크였다. 어쩌다가 섀도우 월드에서 가장 유명한 네피림-월록 커플이 한 쌍 더 늘어났는지, 그 사연을 들은 루크는 무슨 말을 더 하기보다는 그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다음은 카타리나였다. 그녀는 소문을 듣자마자 매그너스의 로프트로 포탈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 마법을 쓰지 말 것을 지시하고는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는 베인 때문에, 카타리나가 포탈을 넘어왔을 때에도 매그너스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평소의 화려함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카타리나는 그가 마력을 잃었을 때를 떠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매그너스에게 특별한 문제는 없으며 마력도 회복되는 중임을 확인한 뒤, 그녀는 이 사태에 대해 제정신이냐, 어쩐지 지난 몇 십 년 잠잠하다 했다, 이제 나잇값을 할 때도 되지 않았냐 하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카타리나가 돌아간 뒤에도 그 잔소리에 여파로 머릿속이 빙빙 도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가 깨어나 보니, 어느새 다른 차원에서 온 손님들을 그들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되어 있었다.


  “마력의 흐름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어.”


  노을이 질 무렵, 베인의 최종 진단이 내려지자마자 매그너스는 잔뜩 멋을 부리며 손을 휘저어, 단숨에 완벽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완성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 손에 푸른 불꽃이 피우더니 잠시간 집중해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회복량은 원래 내 힘의 80 퍼센트……, 아니 85 퍼센트 정도는 되겠군.”
  “여차하면 내 마력을 쓸 수 있으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두 매그너스 베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두 사람을 소환했을 때처럼, 매그너스는 또다시 직렬로 선 행성들을 올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 바닥에 마법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또한 매우 복잡한 마법식이었으나 이번에는 베인의 도움으로 보다 빠르게 그려나갈 수 있었다. 마침내 화이트북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모양의 마법식이 완성되었고, 베인은 그 마법식 안에서, 매그너스는 바깥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한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베인의 마력이 매그너스에게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매그너스는 다른 한 손을 마법식 위로 뻗었다. 베인은 남는 손으로 매그너스가 스펠을 읽을 수 있도록 화이트북을 펼쳐들었다. 라이트우드는 베인의 곁에 섰고, 알렉은 마법에 휘말리지 않도록 매그너스의 뒤에 섰다.


  “시작할게.”


  매그너스가 말했다. 마법진으로 뻗은 그의 손끝에 마력이 모여 금빛으로 반짝였다.


  “잠깐……!”


  베인이 매그너스의 손을 놓으며 한 발 물러섰다. 그 바람에 마법은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되었다. 베인의 눈이 시계로 향했다. 행성의 직렬이 흐트러질 때까지 적어도 두 시간 정도의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떠나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으로 다른 두 사람을 로프트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테라스로 통하는 문을 닫아 잠그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 번 더 마법을 걸었다. 두 명의 알렉은 테라스 문에 바짝 붙어서 주인 잃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각자 자신의 매그너스를 바라보았다. 베인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난간에 팔을 괴고 기대어 섰다. 매그너스도 그의 옆에 같은 자세로 섰다.


  “네 알렉산더는 너에 대해 얼마나 알아?”


  베인이 물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의 가장 추악한 부분까지 알고 있지. 가족과 관련된 어릴 때의 일까지도.”
  “혹시 여기서도 어머니께선 스스로…….”


  매그너스가 씁쓸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와 양아버지에 관해서는 어떤 계기가 있어서 직접 털어놨어. 그리고 네 세상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친아버지하고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증오하고 있지. 알렉산더에게 그 때의 일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 우린 이돔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거든. 아마도 그 때 악마들에게서 주워 들은 이야기들로 나와 아스모데우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아.”


  베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매그너스를 바라보았다. 두 매그너스 베인은 아스모데우스와 함께한 시간까지도 같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저 건너편 세상은 데몬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쪽 세상과 그다지 다를 게 없었던 건 아닐까. 매그너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베인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너의 알렉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지?”


  베인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돔에서 돌아온 뒤에, 나는 알렉산더에게 전부 다 이야기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는 듣지 않겠다고 했지.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면서. 그리고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그 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의 매그너스 베인이기 때문에 그 모든 과거까지 사랑한다고, 그렇게 얘기해 줬어.”


  매그너스는 몸을 살짝 돌려 유리문 너머에 서 있는 자신의 알렉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알렉은 그저 매그너스의 웃는 얼굴에 다시 한 번 반해서 바보처럼 웃었다.


  “내 천사, 마음씨도 정말 아름답지.”


  매그너스의 시선이 다시 베인에게로 향했다.


  “네 알렉은 먼데인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월록이라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란 걸 잊지 마. 그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네 마음이 불편해진다면, 그냥 전부 털어놔. 그는 그 시절에 대한 너의 괴로움을 알아볼 거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위로해줄 거야. 물론, 가볍게 할 이야기는 아니니 타이밍을 잘 골라야겠지만.”


  매그너스가 부러 과장되게 웃어보였고, 마침내 베인의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매그너스 베인.”


  대화의 끝을 알리는 말이었다. 매그너스는 손짓 한 번으로 간단히 테라스 문에 걸린 마법을 풀었고, 두 알렉은 그 문이 다시 닫힐까봐 급하게 테라스로 나왔다. 네 사람은 처음처럼 마법식의 안과 밖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시작하지.”


  매그너스가 베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베인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매그너스의 자켓 단추 하나를 뜯어낸 뒤에야 그와 손을 맞잡았다.


  “다른 차원의 물건을 갖고 있으면 차원의 문을 열기 쉬워지잖아. 지금처럼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려면 뭔가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그래서 이걸 가져가서 연구를 해보려고. 성과가 있다면 연락할게. 첫 인상은 솔직히 좀 별로였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매그너스.”


  베인은 동그란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매그너스는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마법으로 베인의 자켓에 달려 있는 단추 하나를 빼앗았다.


  “누가 더 먼저 성과를 얻는지 내기하는 건 어때?”
  “좋아. 대신 섀도우 헌터의 도움은 안 돼. 우리 쪽에는 섀도우 헌터가 없으니까.”


  베인이 내건 조건에 매그너스는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법식을 향해 손을 뻗고 그 손끝에 힘을 모았다. 금빛 마력이 마법식에 옮겨 붙었고, 복잡하게 그어진 선 하나하나가 모두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매그너스는 베인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않았건만, 알렉은 알아서 매그너스의 빈 손을 붙잡고 자신의 힘을 나누어 주었다. 곧 태양빛을 닮은 강한 빛이 일어났고, 그 빛이 사그라짐과 동시에 마법식 위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모습 역시 사라졌다.


  “후…….”


  매그너스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알렉에게 몸을 기댔다.


  “괜찮아?”


  알렉이 걱정스레 물었다. 매그너스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번졌다.


  “아니. 하지만 아주 강한 네피림의 정기를 받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


  그는 알렉의 넓은 가슴에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사실 나한테 아주 잘생긴 네피림 애인이 있는데, 나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을 옆에 두고도 한 달 넘게 말 그대로 손만 잡고 자더라고. 일 때문에 바쁘고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는 하지만, 아아……. 그 바람에 나는 기운이 다 빠져버렸어.”


  오래 전부터 장난을 좋아했던 월록은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연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과장된 몸짓으로 휘청거렸다. 알렉은 매그너스의 허리에 팔을 둘러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니까 알렉산더, 오늘은 내 유혹에 넘어와 주면 안 될까?”


  장난스런 비유가 덧대어져 있었지만 알렉을 원하는 매그너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매그너스는 한 달 넘게 먼저 잠에 빠져든 알렉의 얼굴을 바라만 보다가 잠들어야 했고, 그 이후 사흘간 두 사람은 서로 얼굴조차 보지 못했으며, 바로 어젯밤까지는 알렉이 매그너스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이 노련한 월록의 유혹을 완강히 버텨냈던 것이다. 애인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이제 막 시작한 연애 초기를 제외하면, 아니, 어쩌면 제외하지 않더라도 매그너스 베인의 수 세기의 삶에서 이 정도로 금욕적인 시기는 없었을 터였다.


  “나 이제 안 아파. 멀쩡해. 그러니까 그만 애태우고 안아줘, 알렉산더.”


  결국 천사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한 가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평행 세계에서 온 매그너스 베인에게, 분명히 당신이지만 당신이 아닌 그 모습에 조금 설렜었어. 하지만 역시,”


  알렉은 매그너스의 무릎 아래에 손을 넣어 그를 가뿐하게 안아 들었다.


  “이쪽의 매그너스 베인이 더 좋아.”


  매그너스는 알렉의 목에 양 팔을 감으며 그의 입술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내 천사가 나한테 미안한 일을 저질렀네. 오늘 밤에 그에 대한 보상도 해 주려나.”


  이번에는 알렉의 입술이 매그너스의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기꺼이.”







트위터 http://twitter.com/writtenbyYung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