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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헌터스/말렉] 선물

알렉 생일 축하 연성






  언젠가의 밤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그너스.”


  알렉이 나른한 목소리로 제 품에 안겨 있는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여느 때처럼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 서로를 안고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다. 시선을 맞추기 위해 감싸 안은 두 팔의 힘을 풀자, 빈틈없이 맞닿았던 두 사람의 몸이 살짝 떨어졌다. 매그너스가 고개를 들어 알렉을 바라보았다.


  “생일이 언제에요?”


   다소 맥락 없이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매그너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 꼬리를 끌어당겼다.


  “클레이브 자료에는 내 생일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


  잔뜩 쉰 목소리로 장난스레 되물어온 말에 알렉은 입술을 깨물며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매그너스는 그런 알렉이 귀여워서 쿡쿡 낮게 웃었다.


  “오, 알렉산더, 그냥 글자 그대로의 질문이었어. 뉴욕 인스티튜트의 수장이 브루클린의 하이월록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나쁠 건 없지. 내 뒷조사를 한 걸 탓하려는 건 아니었단다.”


  ‘뒷조사’라는 말은 당황하는 알렉의 귀여운 얼굴을 더 보고 싶어서 일부러 고른 단어였다. 과연 알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버버 하는 소리를 내었다. 매그너스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농담! 섀도우 헌터가 클레이브 공식 기록을 본 걸 두고 뒷조사라고 생각하진 않아.”


  알렉은 여전히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다. 매그너스는 축 처진 강아지 귀가 보일 것만 같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 생일은 12월 8일이야.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지.”


  알렉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려주며, 매그너스는 장난기를 걷어내고 애정과 따스함을 가득 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알렉도 안도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아직 좀 남았네요. 다행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지나가 버렸을까봐 걱정했어요.”


  너무 오래 살아온 탓에 매그너스에게 생일이란 전혀 특별한 날이 못 되었다. 연인이 자신의 생일을 그냥 넘어간다 해도 조금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 아마 알렉이 묻지 않았다면 구태여 이야기 할 일은 영영 없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채 100년도 살지 못하는 필멸자에게 생일은 꽤나 특별한 날일 터.


  “네 생일은? 설마, 지나간 건 아니지?”


  그런데도 이걸 이제야 묻다니! 매그너스는 알렉이 먼저 물어왔을 때에야 생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 자신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9월 12일이에요.”


  다행히 알렉의 생일도 아직 지나기 전이었다.


  “내 생일보다 네 생일이 먼저네. 그 날은 기대해도 좋아, 알렉산더.”
  “난 당신만 있으면 돼요.”


  알렉은 다시 두 팔로 매그너스를 끌어안았다. 매그너스도 그의 품으로 좀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주 평범한 어느 밤이었다.







***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뉴욕 인스티튜트는 눈에 띄게 바빠졌다. 인스티튜트에 새로 배정 받은 헌터들 때문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뉴욕의 헌터들과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풋내기들은 그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여서 당장 팀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뉴욕처럼 큰 도시는 혐오에 찌든 미치광이 네피림이나 지옥의 여왕이 아니더라도 섀도우 헌터가 필요한 사건 사고가 많았고, 어린 헌터들도 하루 빨리 제 몫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기존 업무에 신입 헌터들을 교육하는 일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소수의 인원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가 돌아가면서 신입 교육에 참여하기로 하였으나, 수장인 알렉은 모든 것을 총괄해야 했기에 숨 돌릴 틈 없이 일에만 몰두해도 자정 가까이 되어 마치는 것이 일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월록 애인과의 만남도 다운월더 대표들과의 정기 미팅에서나 겨우 가능했다.


  “정말 미안해요, 매그너스…….”


  미팅이 끝난 뒤, 비로소 매그너스와 단 둘이 마주 선 알렉은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매그너스는 쓰게 웃으며 알렉의 뺨을 쓰다듬었다. 사과를 잘 못한다던 그 알렉은 어딜 갔는지,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데, 알렉은 그 사이 참 많이 변했다. 물론 좋은 쪽으로.


  “내가 브루클린의 하이월록이라서 다행이지? 못 본 사이 얼굴이 반쪽이 됐네. 그래도 여전히 잘생겼지만, 이대로는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니까…….”


  하이월록이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그의 손 안에 에메랄드 빛 액체가 담긴 조그만 유리병이 나타났다.


  “피로 회복에는 내 포션이 체력 룬보다 효과가 좋을걸. 원래는 엄청 비싸게 받지만, 수장님에게는 돈 말고 다른 걸로 받도록 하지. 일이 한가해지면 값을 치르러 오도록 해.”


  매그너스는 포션 병을 알렉의 손에 쥐어주며 가볍게 윙크를 했다. 이제 그 정도 신호는 충분히 알아듣게 된 알렉이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먼발치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라파엘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계속 그러고 있을 생각이면 일단 포탈 좀 열어주겠어? 아직 해가 중천이라서 말이지.”
  “오, 미안해, 라파엘.”


  매그너스는 짧은 사과와 함께 즉시 듀모르로 포탈을 열어주었다. 라파엘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탈로 들어갔다.

  부당하거나 그릇된 명령이 아닌 한, 매그너스는 알렉이 클레이브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긍지 높은 섀도우 헌터인 연인을 향한 존중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존중과는 별개로 바쁜 임무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움과 외로움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그너스의 깊은 그리움와 외로움은 연인과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반가움을 끝없이 증폭시켜, 그의 대자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포탈을 통해서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까지 잊게 만든 것이었다.


  “나도 이제 그만 가볼게. 안 그래도 바쁠 텐데 계속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지.”


  매그너스가 애써 아쉬운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반면, 알렉은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했다.


  “조금 더 있어도 괜찮아요. 당신이 도와줄 일도 있고.”
  “그 말, 정말이야?”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물음에 알렉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기만 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실, 요즈음 알렉의 업무 중에는 매그너스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매그너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알렉의 목을 끌어안고 사랑을 가득 담아 입을 맞췄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짧지만 깊은 숨결이 오갔다.


  “바쁜 일들 얼른 정리하고 포션 값 치르러 와.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알았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험난한 세월을 헤치고 살아남은 수백 살 먹은 월록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니, 그 말을 한 것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코웃음을 쳐 주었을 테지만, 다름 아닌 알렉이기에, 매그너스는 그의 따스한 애정을 만끽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온기 탓에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층 더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매그너스!”


  매그너스가 인스티튜트를 막 나서려 할 때, 이자벨이 그를 붙잡았다. 클레리와 제이스도 함께였다.


  “곧 오빠 생일인 거 알죠?”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묻는 이자벨에게, 매그너스는 가벼운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이제 막 9월에 접어들었으니 알렉의 생일은 열흘 남짓 남은 상태였다.


  “알렉은 어릴 때부터 자기 생일을 잊고 살아와서 주변에서 먼저 챙겨주지 않으면 전혀 축하를 받지 못하거든.”


  제이스가 말했다.


  “작년 생일에는 초를 꽂은 케이크를 보고도 누구 생일이냐고 물었을 정도였어요.”


  이자벨이 덧붙였다. 매그너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자신보다 헌터로서의 임무를 우선시하는 것이 딱 알렉다웠으나, 바로 그 점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더 바쁘니까, 아마 오빠는 벌써 9월이 된 줄도 모르고 있을 거예요.”


  이자벨의 커다란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눈치 빠른 수백 살 월록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눈빛에 담긴 의도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매그너스의 눈동자에도 그녀의 것과 같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파티 장소는 내 로프트 정도면 충분하겠지?”







***







  “이제 그만 가 봐도 괜찮아, 제이스.”


  알렉이 손에 들고 있던 한 묶음의 신입 헌터 교육성과 보고서를 책상 오른쪽 끝으로 옮겨놓으며 말했다. 책상 왼편에는 아직도 채 살펴보지 못한 서류가 백과사전 두께만큼 쌓여 있었다. 제이스는 말없이 그 서류더미 중 맨 위에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알렉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비쳤다.


  “네가 내 파라바타이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난 정말 괜찮아. 네 일을 다 마쳤으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도 좋다고.”


  그러나 제이스는 태연한 얼굴로 서류철을 펼칠 뿐이었다.


  “이래서는 너랑 클레리의 비번을 맞춰서 일정을 짠 의미가 없잖아. 일부러 둘이 함께할 시간을 만들어준 건데.”


  알렉이 그렇게 말했을 때에야 제이스의 입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인스티튜트의 수장을 파라바타이로 둔 덕에 약간의 호사를 누리는 걸 거절할 생각은 없지만, 알렉, 그래도 그건 너무 티 났어.”


  서류에서 눈을 뗀 제이스는 멋쩍은 표정의 파라바타이를 보며 한 번 더 소리 내어 웃었다.


  “나랑 클레리는 같이 일하잖아. 그다지 로맨틱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최소한 매일 얼굴은 보고 있다고. 너야말로 지난 번 다운월더 미팅 이후로 매그너스를 못 만나고 있지 않아?”


  제이스의 물음에 알렉이 한숨을 푹 쉬었다. 다운월더 미팅은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었고, 알렉은 정말로 그 날 이후 제 연인의 털끝 하나도 보지 못했다. 확실히 제이스나 클레리의 사정을 살펴주기엔 알렉 쪽이 더 딱한 상황이었다.


  “나는 인스티튜트의 수장이잖아. 사적인 이유로 일을 미룰 수는 없어.”


  매그너스와 사귀게 된 이후, 알렉은 그 이전에 비하면 꽤 많이 유연해진 편이지만, 여전히 고지식하고 답답한 면이 있었다. 제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때, 알렉과 제이스의 휴대폰으로 동시에 메시지가 한 통씩 날아들었다. 액정에 찍힌 발신인의 이름은 각자의 연인의 이름이었다. 제이스가 먼저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열어보더니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알렉, 아무래도 클레리랑 매그너스는 바쁜 남자친구들을 두고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인데.”


  알렉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매그너스에게서 온 메시지를 열었다. 산처럼 크림을 쌓아올린 프라페를 사이에 두고 예쁘게 웃고 있는 매그너스와 클레리의 사진이 알렉의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빈 의자에는 여러 개의 종이봉투가 겹겹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쇼핑이라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어느새 알렉도 제이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자그마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이 매그너스의 얼굴만 좀 더 확대해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두 사람의 휴대폰에 한 장의 사진이 더 전송되었다. 이번에는 이자벨까지 셋이서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요새 부쩍 셋이 같이 다니지 않아?”


  알렉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제이스는 잠시간 긴장한 기색을 비치더니 애써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다행히 여전히 매그너스의 사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던 알렉은 제이스의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런가?”
  “이지랑 클레리, 일을 일찍 마치는 날이면 항상 매그너스를 만나러 가는 것 같던데.”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줄 알았건만, 매그너스가 관련되면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라고, 제이스는 생각했다. 클레리와 이자벨이 시간이 날 때마다 매그너스를 찾아가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알렉의 생일 파티 때문이었다. 생일 파티를 열기로 결정한 뒤, 네 사람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역할을 나눴다. 파티 준비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알렉의 연인인 매그너스의 몫이 되었고, 제이스는 알렉이 생일 당일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찌감치 인스티튜트를 나가 매그너스의 로프트로 향할 수 있도록 함께 밤을 새우며 일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어쩌면 제일 고단한 역할이었으나, 그는 알렉의 파라바타이였으므로 업무를 돕겠다고 나서기에 가장 자연스러웠다. 클레리와 이자벨은 매그너스와 함께 알렉의 생일 선물과 그를 위한 특별한 케이크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자벨은 알렉의 취향을 잘 알았고, 클레리의 뛰어난 미적 감각은 ‘알렉의 취향들’ 중에서 베스트를 고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이야.”


  알렉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다행이지……. 응? 뭐라고?”


  아무 생각 없이 알렉의 말을 따라하던 제이스가 의아한 말투로 되물었다.


  “지난 번 다운월더 미팅에서 매그너스를 만났을 때,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 같기는 했지만, 뭐랄까, 외로워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 사진에선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 두 사람 덕에 매그너스가 혼자 있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아아……, 그래, 다행…… 이네.”


  대놓고 ‘네 생일 파티를 준비 중이다’라고 말해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꽁꽁 숨길 생각도 없는데, 어떤 종류든 애정을 받는 것에 익숙치 않은 알렉은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제이스는 그런 알렉에게서 향후 몇 년간 지속될 매그너스의 고생길을 보고 있었다.







***







  9월 12일, 알렉의 생일 당일, 매그너스의 로프트는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고풍스런 조명은 한층 더 밝은 빛을 내었고, 벽과 천장은 알렉을 닮은 푸른색 휘장으로 장식되었다. 카우치와 낮은 테이블 대신 거실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커다란 식탁 위에는 동서양의 산해진미가 잔뜩 차려져 있었는데, 전부 알렉과 매그너스가 포탈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기는 동안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로, 지난 하루 동안 매그너스가 그곳들을 일일이 직접 다시 방문하여 공수해 온 것이었다. 매그너스는 식탁 중앙의 빈 자리에 3단으로 쌓아올린 케이크를 옮겨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화려한 상차림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와……. 매그너스, 정말 대단해요!”


  클레리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매그너스의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다른 음식들은 추억이 담긴 가게에서 사온 것들이지만 그 케이크만큼은 매그너스가 마법조차 쓰지 않고 먼데인 방식으로 손수 만든 것이었다. 포션 제조가 요리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인지 월록들은 대체로 요리 실력이 좋았지만, 매그너스의 케이크는 단지 잘 만든 정도가 아니라 베테랑 파티쉐의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훌륭했다.


  “고마워, 비스킷.”


  매그너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선물상자를 보기 좋게 쌓아놓느라 뒤늦게 케이크를 발견한 이자벨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요? 그 어떤 마법으로도 이렇게 멋지게 만들 수는 없을 거예요!”


  이자벨의 칭찬에 매그너스는 입 꼬리를 조금 더 끌어올리며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케이크를 만드는 사이 밀가루와 크림이 묻어 더러워진 그의 옷이 순식간에 화려한 파티 의상으로 바뀌었다. 가슴 근육이 살짝 드러날 정도로 단추를 푼 붉은 셔츠에는 눈가를 장식한 글리터와 비슷한 은은한 펄이 들어가 있었고, 딱 맞는 사이즈의 검은 바지는 가늘지만 탄탄한 바디라인을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서로 다른 장식이 달린 서너 개의 목걸이를 적절히 레이어드 한 것은 여전했고, 손가락에는 늘 끼우고 다니는 각각 M, B가 새겨진 커다란 반지와, 알렉과 서로의 이름을 새겨 나누어 가진 백금 반지 외에도 팔찌와 연결되어 손등을 화려하게 수놓는 핸드 하네스가 더해졌다. 마지막으로, 악마 혼혈인 그의 오른쪽 귓바퀴를 반쯤 감싼 커다란 천사 날개 모양 이어커프는 네피림 연인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것이었다.


  “이제 슬슬 손님을 맞이해야겠군.”


  매그너스는 춤을 추듯 허공에 손을 휘저어 로프트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파티라는 이야기에 잔뜩 들뜬 사이먼과 영 내키지 않는 듯한 얼굴의 라파엘이 서 있었다. 곧이어 루크와 메리스, 그리고 마이아가 도착했다. 딱 그 즈음, 클레리의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했다.


  “제이스한테서 온 메시지에요. 알렉이 지금 막 출발했대요!”


  클레리의 말에 매그너스가 가볍게 팔을 저어 포탈을 열었고, 제이스를 필두로 한 무리의 섀도우 헌터들이 포탈을 넘어 로프트로 들어섰다. 모두 알렉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모인 이들이었다. 이자벨과 클레리는 폭죽을 들고 문 양 옆에 자리를 잡았고, 제이스와 사이먼은 ‘HAPPY BIRTHDAY’라고 적힌 현수막의 양쪽 끝을 잡고 나란히 섰다. 루크는 샴페인 병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 풍경이 만들어낼 난장판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발코니 방향으로 물러섰다. 이제 남은 일은 알렉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뿐이었다.







***







  모처럼 일찍 일을 마친 뉴욕 인스티튜트의 수장은 연신 시간을 확인하며 어딘가로 내달렸다. 언뜻 연인의 집으로 향하는 듯했으나 아주 약간, 한 블럭 정도 어긋난 방향이었다. 늦지 않았어야 할 텐데. 알렉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음료보다는 디저트 류가 주 메뉴인 카페의 긴 진열장에는 원래 온갖 종류의 조각 케이크가 놓여 있었으나, 폐점 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지금은 고작 대여섯 종류만 남은 채였다. 이 카페는 언젠가 아주 한가로웠던 휴일 아침, 느지막이 잠에서 깬 알렉과 매그너스가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왔던 곳이었다. 그 날, 알렉은 매그너스가 의외로 달콤한 케이크를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매그너스가 유독 좋아했던 커스터드 크림이 올라간 케이크가 한 조각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 알렉이 안도감에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이거, 포장해주세요.”


  알렉의 표정을 보고 그가 소중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 케이크를 샀다는 것을 알아챈 점원은 센스 있게 작은 케이크 상자 위에 커다란 하트 모양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알렉은 흡족한 표정으로 값을 치르고 카페를 나섰다. 그것은 그간 일이 바빠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던 자신을 기다렸을 연인을 향한 사과와 위로를 담은 선물이었다.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미리 연락을 해 두지 않았다.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예쁘게 웃으며 자신을 맞이해줄 매그너스를 떠올리자, 알렉은 솟아오르는 입 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비록 당장 준비할 수 있는 선물은 작은 케이크뿐이었지만 매그너스라면 분명 벅찬 표정으로 받아줄 것이었다. 일본에서 산 작은 부적을 건넸을 때처럼.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케이크를 먹는 연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팡―!


  그러나 로프트에 도착한 알렉이 마주한 것은 놀란 얼굴의 매그너스가 아니라 귓전을 때리는 요란한 폭죽 소리였다.


  “Happy birthday, Alec!!”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게 된 것은 알렉 쪽이었다.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


  로프트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알렉의 주변에 모여들어 축하 인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알렉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알렉, 오늘 9월 12일이잖아! 네 생일이라고!”


  제이스가 못 말리겠다는 듯 무릎을 치며 웃었다. 알렉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에 뜬 날짜를 확인했다. 9월 12일. 정말로 자신의 생일이었다. 그는 허탈한 듯 웃으며 제 이마를 짚었다.


  “알렉, 이 파티는 매그너스가 준비한 거예요.”


  클레리가 매그너스가 서 있는 방향으로 곁눈질을 하며 말했다.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에게 가려져, 그녀의 시야에서는 매그너스가 보이지 않았다.


  “나하고 클레리, 제이스가 도왔고.”


  이자벨이 덧붙였다. 알렉이 고개를 높이 빼들고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매그너스를 찾았다.


  “매그너스!”


  알렉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두 무리로 나눠지며 두 사람 사이를 잇는 길이 생겨났다.


  “알렉산더.”


  매그너스는 흐뭇하게 웃으며 천천히 한 걸음씩 알렉에게 다가갔다. 그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고, 이 자리를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점에서 또한 너무나 뿌듯했다.


  “생일 축하해.”


  매그너스가 알렉의 머리 위에 붙은 종이리본을 떼어내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알렉의 입술 사이에서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알렉산더……?”


  의외의 반응에 매그너스는 당황한 기색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무언가 잘못한 걸까?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은 눈에 띄게 깜빡이는 횟수가 늘었고, 호흡도 약간 빨라졌다.


  “이건 정말 예상도 못했어요. 정말 당신을 이길 수가 없네요.”


  알렉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매그너스에게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알렉이 건넨 것을 받아 든 매그너스는 그 상자에 예전에 알렉과 함께 갔던 카페의 로고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도 자주 못했잖아요. 오늘은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나서……. 당신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까, 사과의 의미로 사온 거예요. 이 집 케이크, 좋아하잖아요.”


  알렉의 상상과는 다소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비로소 매그너스의 얼굴 위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아무 잘못 없는 매그너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한 뒤에도 겨우겨우 어설픈 사과를 하는 것이 전부였던 알렉이었다. 그 때에 비하면 일이 바빠 뜻하지 않게 연락이 뜸해진 것 정도는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건만, 지금의 알렉은 매그너스의 기분을 신경 쓰며 선물까지 준비해서 사과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알렉의 변화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애정이 깊어진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이지랑 클레리가 요즘 당신하고 자주 만나는 건 알고 있었어요. 덕분에 당신이 쓸쓸하진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죠. 나를 위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니…….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연락도 안 하고 온 건데, 그런데 당신은…….”


  알렉이 벅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매그너스는 상자 윗부분을 살짝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상자 안에는 그가 이 카페의 케이크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들어있었다. 여전히 섬세함과는 담을 쌓은 듯한 성격인 연인이 자신에 대해서만은 작은 것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그너스를 더욱 감동케 했다.


  “오, 알렉산더.”


  매그너스는 마법으로 작은 케이크 상자를 식탁 위로 옮겨놓은 뒤, 양 팔로 알렉의 목을 끌어안았다.


  “넌 언제나 날 놀라게 해.”


  그리고 사랑스러운 연인의 입술 위에 쪽, 입을 맞췄다. 짧은 입맞춤이 아쉬웠는지, 알렉이 입맛을 다시듯 입술을 핥는가 싶더니 이내 두 사람의 입술이 더욱 깊이 포개어졌다.


  펑―!


  내내 기회를 엿보고 있던 루크가 마침내 샴페인을 터뜨렸다. 알렉과 매그너스의 머리 위로 샴페인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란 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은 오로지 서로의 숨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같지 않아?”


  이자벨이 제이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저 녀석 제때 퇴근시키려고 며칠 동안 체력 룬까지 써가면서 일한 것치곤 파티가 너무 허무하게 끝났는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제이스는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망할 파라바타이 룬을 통해 알렉이 느끼는 벅찬 행복이 전해진 것이다. 저렇게 좋다는데 어쩌겠어. 결국 제이스가 먼저 나서서 손을 내저으며 손님들에게 돌아가라는 신호를 했다.


  “알렉산더, 잠깐.”


  그 기색을 알아차린 매그너스가 알렉을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는 알렉의 등 뒤로 포탈 세 개를 동시에 열었다.


  “내가 보는 방향에서 왼쪽부터 순서대로 인스티튜트, 듀모르, 제이드울프야. 오늘 고마웠고, 조심히들 돌아가.”


  모두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다시 알렉의 품으로 파고든 매그너스의 귓가에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심장 박동과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프트에는 여느 때처럼 알렉과 매그너스, 두 사람만 남았다.


  “침실로 갈까? 지금 당장 포션 값을 치를까 하는데.”


  알렉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식사 전인데 괜찮겠어?”


  매그너스의 시선이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에 잠시 머물렀다 알렉에게로 돌아왔다.


  “당신만 괜찮다면.”
  “난 언제나 괜찮지.”


  알렉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는 곧장 제 연인을 안아들고 침실로 향했다. 파티 음식의 온기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밤은 따스하다 못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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