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렇게 린 공자를 보내고 그 다음 날 아침,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종주의 처소로 가 보았는데, 그 앞에 종주와 린 공자의 신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아닙니까! 두 분이 함께 계신다는 것은 오해가 풀렸다는 뜻이고, 그것은 다시 말해 종주께서 가슴 아파 하시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두 분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혹 두 분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방해하게 될까 저어되어, 나는 부러 발소리를 줄여 걸으며 다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밖에 누구인가."


  그런데 창문 앞을 지날 때, 방 안에서 린 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접니다, 린 공자."


  조금 놀라서 나도 모르게 다소 큰 소리로 답하자, 창문이 조금 열리며 그 사이로 린 공자의 얼굴이 절반 정도 보였습니다.


  "조용히 말 하시게. 장소 아직 자네."


  나는 소리를 내어 답하기보다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지요.


  "오해를 푸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지요. 린 공자께서는 내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러다 갑자기 미간을 좁히며 윽, 하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창문은 전일 종주께서 앉아 계시던 침상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고, 창문 틈으로 보이는 린 공자의 모습은 침상에서 몸을 뻗은 모양새였어요. 그러니 간밤의 일은 뭐…….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해도 풀고, 다른 것도 풀었지."


  린 공자께서 친히 확인사살을 하시기도 했고요.


  "지금 시간이 어찌 되었는가?"
  "사시입니다. 두 분치고는 늦잠인 것 같습니다만."


  내가 답하는 동안 린 공자께서는 체통 없이 크게 하품까지 하시더라고요.


  "그야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으니까……. 장소 먹일 탕약을 달여야 하는데, 내 한쪽 팔이 장소의 베게가 되어 있으니 움직이질 못 하겠구먼. 작일에는 탕약을 입에도 대지 않고 쏟아버렸으니 오늘은 약재를 두 배로 넣어서 달여야 하는데……."


  그 와중에도 종주의 몸을 챙기는 모습에 나는 조금 감동을 받아 버렸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애초에 린 공자께서 오해를 만들지 않았으면 될 일입니다만……. 아, 맞아, 그것을 잊을 뻔 했네요. 린 공자께서 탕약 이야기를 하시기에 내가,


  "제가 도와드릴까요? 약재를 구분하는 정도는 할 수 있으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넣고 달여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하고 물었는데 내 말을 중간에 끊으시면서,


  "싫네. 어차피 이제는 몸이 아파 먹는 약도 아니니 그냥 조금 늦게 먹이지 무얼. 내 것 넘보지 마시게나."


  하시는 게 아닙니까. 아니, 대체 누가 누굴 넘봤다는 건지……. 물론 나 역시 종주를 좋아하지만 린 공자처럼 연모하는 마음이 아니라 존경심이라든가, 혹은 친 오라비 마냥 나를 챙겨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라든가 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을요. 종주께서도 그렇지만 린 공자께서도 연정에 관해서는 열대여섯 먹은 소년처럼 구시더이다. 그래도 나중에는 자신을 일깨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며 무상으로 랑야각에 자문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기는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평생 랑야각까지 찾아가 답을 구해야 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저 종주를 아껴주시겠다 약조해 주세요. 모든 강좌맹 형제들이 린 공자께 바라는 것이 그것일 터이니 말입니다."


  내가 그리 답했더니 린 공자께서는 전에 없이 진지한 낯빛으로 말씀하셨지요.


  "낭자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 장소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길 것이네. 이미 그리하고 있고. 이번 일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을 것이야."


  그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두 분이서 함께 강가로 나들이를 다녀오셨으니 잘 된 일이지요.










***










  "그 때의 작은 소동 덕에 린 공자와 부쩍 가까워진 겁니다. 그 뒤로는 랑주에 오셨다가 나와 마주치면 먼저 말을 건다거나 장난을 친다거나 하기 시작하셨고요."


  소녀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켠 뒤 다시 내려놓았다. 소녀에게 '양 사형'이라고 불린 이는 한숨을 쉬며 제 이마를 짚었다.


  "우리 소각주께서 언제나 강좌맹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송구합니다."


  소녀는 양 손을 내저었다.


  "폐를 끼친다고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 분이 오실 때마다 랑주가 떠들썩해지는 정도에요."


  그러나 말 속에 가시가 있는 듯하였다.


  "혹 무슨 일이 더 있었습니까? 낭자도 알다시피 내가 랑주에 걸음하기 시작한 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아서 알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녀가 한숨을 지었다.


  "양 사형, 정말로 비밀은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내가 이리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 것을 린 공자께서 알면 무슨 골탕을 먹이실지 몰라요."


  소녀는 재차 다짐을 받은 뒤에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










  양 사형도 린 공자께서 비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잘 아시지요? 물론 그것은 의원으로서 치료의 일환으로 하시는 행동이겠습니다만……. 솔직히 절반 이상은 그냥 즐거워서 하시는 것 같단 말이에요. 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 넘어가고. 한 번은 종주의 몸 상태가 유달리 좋아, 린 공자와 함께 시전에 나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비류는 종주의 호위이니 당연히 따라 나섰고요. 그런데 웃으며 외출을 하신 분들께서 돌아오실 때에는 정 반대의 낯을 하고 계시더군요.


  "장소~ 너무 그러지 말고 나 좀 보게나. 장소오~!"


  린 공자께서 애처로이 종주를 부르셨지만 종주께선 돌아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척척 앞서 걸으셨습니다. 종주 곁에 있던 비류는 단정히 묶었던 머리칼이 다 흐트러져 있었고요.


  "장소, 정말 나 안 볼 텐가?"


  린 공자께서 그리 쩔쩔 매시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종주께서 정말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거든요. 아무리 보아도 린 공자께서 무슨 잘못을 하신 모양인데, 도통 사죄는 하지 않으시고 종주를 불러대기만 하니 종주께서 봐 주실 리가 없지요. 그래도 잘못한 것을 스스로 알긴 아는지 앞서 걷는 종주를 차마 붙잡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간신히 소맷자락만 잡으시더이다. 그나마도 종주께서 매몰차게 뿌리치셨지만요. 결국 린 공자만 내원에 덩그러니 남겨졌지요.


  "또 무슨 잘못을 하신 겝니까?"


  그 모습이 안쓰러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린 공자께서는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았다는 듯 금세 밝은 얼굴을 하며 두 손으로 제 손을 꼭 붙잡으셨어요.


  "낭자! 낭자는 장소가 귀애하는 이이니, 가서 내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게! 지금 장소가 골이 나서 내 말은 듣지도 않으려 하네만 낭자가 하는 말이라면 경청할 것이야!"


  우선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기로 했지요.


  "내 시전에서 비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머리끈을 하나 보았네. 그것을 들고 비류에게 사줄까 하고 물으니, 그 배은망덕한 녀석이 내가 사주는 것은 싫다는 게야. 낭자도 알다시피 장소는 그런 것을 보는 안목이 없지 않은가. 비류에게도 소 형아가 골라준 것보다야 내가 골라준 것이 나을 것이라 말했는데, 소 형아 것이 낫다며 대뜸 덤벼들지 않겠는가?"


  비류가 린 공자를 싫어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그 정도로 덤벼들거나 하진 않아요. 다만 그 때에는 린 공자께서 랑주에 머문 시간이 꽤 길었고, 거의 항상 종주와 함께 계셨기에 비류가 좀처럼 종주 곁에 다가갈 수가 없었거든요. 린 공자께서 단단히 골이 나 있던 아이를 자극한 거죠.


  "덤벼드는데 상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 내 비류와 조금 소란을 피우기는 했네. 시전의 점포 몇 개가 피해를 입은 것도 사실이나, 몇 곱절로 보상을 해 주었으니 해결은 잘 되었단 말일세. 그런데도 장소가 저리 나오니……. 게다가 어디 소란은 나 혼자 피웠는가? 비류가 덤벼든 것이 시작이었고, 그런 비류를 말리지 않은 것은 장소가 아닌가! 기실 장소가 비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마디만 했어도 소동은 생기지 않았을 터인데!"


  린 공자께서는 제 손을 더욱 꼭 붙잡으셨어요.


  "그러니 낭자가 장소에게 내 무고함을 피력해 주게. 응?"


  나는 절대로 종주께 그런 말씀을 올릴 생각이 없었지만, 그리 하겠다 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으실 것 같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요. 생각해보세요. 시전에서의 소동이 아직 사리 분별에 서투른 아이와 랑야각 소각주 중 누구의 책임입니까? 솔직히 린 공자께서 마음만 먹었으면 한 손으로도 비류를 제압할 수 있음을 내 분명히 알고 있는데! 어쨌든 난 린 공자의 성화에 못 이겨 안채로 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종주께서는 그저 차를 들고 계실 뿐이었지요. 다만 종주를 따라 안채로 든 것 같았던 비류가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종주께 차 한 잔을 대접받았고요.


  "비류는 그새 다시 나간 겁니까?"


  종주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후원 쪽으로 잠시 눈길을 두셨습니다.


  "꾸중을 듣고는 골이 난 게지요."
  "시전에서의 일 때문에요?"


  내 질문에 종주께선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린신에게 들으셨나보군요. 그는 끝까지 제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요. 내가 작고 어린 것들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소저에게 제 변호를 부탁했을 것이고요. 비류와는 달리 소저하고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비록 린신의 부탁 때문이라고는 하나 소저께서 하시는 이야기이니 들어드리기는 하겠습니다만……. 현명한 소저께서는 이미 입장을 정하신 듯하군요."


  그 분은 또한 내 속내까지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는 종주의 뜻을 따르는 편이었으니까 누구든 그리 추측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뭐, 아주 가끔, 예를 들면 종주께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행동하실 때에는 그 뜻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종주를 위한 것이니까요.


  "린 공자께서 주장하시기를, 소동의 시작은 비류였고, 소동의 원인을 따져 올라가면 결국 비류를 말리지 않은 종주의 탓이 되니, 자신은 무고하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종주께서는 고개를 저으며 깊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린신이 랑주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니 비류의 심기가 편치 않은 모양입니다. 비류는 단지 소생과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데……. 린신이 어른답게 때때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면 조금 나았을까요. 물론 그가 비류를 놀리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치료 때문입니다만, 사람이 많은 시전 한복판에서까지 그리 할 필요가 무에 있단 말입니까."


  양 사형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요? 강좌에서도 강좌맹 종주를 실제로 본 이가 드물다고……. 종주의 몸이 좋지 못하여 자주 출타를 하실 수 없어 그리 된 것일 뿐이고, 부러 숨기고 계신 것은 아닌지라 종주의 얼굴이 알려진다 한들 보통은 문제 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날은 상황이 조금 달랐지요.


  "그리 소란을 피우고 점포 대여섯 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 상황에 시전 상인들이 제가 매장소인 것을 알아버렸지 뭡니까. 비류와 함께 날뛰던 린신이 아수라장이 된 시전의 꼴을 보고 수습을 해야겠다 싶었는지 제게 비류를 말려 달라 하더군요. 그러던 중에 소생의 이름이 크게 불려졌고요.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랑주입니다. 강좌맹 본원이 있는 랑주요. 이래서는 강좌맹 종주로서 면이 서겠습니까?"


  종주께서도 계속 비류를 말리려 했다고 합니다. 다만, 시전에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고, 종주의 몸은 그 사람들이 내는 소음을 넘어서는 목소리를 낼 힘이 없었던 것이지요. 린 공자께서 종주를 큰 소리로 불렀을 때에야 마침내 찬물을 끼얹은 듯 주변이 조용해졌다고 해요. 당연히 그랬겠지요. 얼굴 한 번 보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힘들다는 강좌맹 종주의 이름인 것을요.


  "그 때에야 간신히 비류를 불러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돌아온 것이지요. 그런데도 린신, 그 치는 사죄 한 마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리 소저와 소저를 귀애하는 소생의 마음을 이용하려 드니……."


  저를 귀애하신다는 이야기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답니다. ……아, 린 공자께서 직접 비류를 제압하지 않은 이유요?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받아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리 한창 열이 올랐을 때 제압하려 들면 비류는 잠시 순응하는가 싶다가 다시 덤벼들거든요. 아무튼 여기까지만 했으면 그다지 큰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보상을 하여 수습도 마쳤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었겠으나, 안타깝게도 문제는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려 타주께서 급히 들어와 전한 소식이 그 문제였지요.


  "종주, 금일 피해를 입은 점포 중 한 곳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점포는 먼 나라에서 들여온 각종 희귀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 마가다국에서 들여온 것들 중 한 가지를 완전히 못 쓰게 되었다 합니다. 헌데, 그것이 하필 신라국으로 보낼 교역품인지라……."


그 교역품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처음 듣는 것이었거든요. 다만 향신료의 일종이라 한 것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생소하기는 종주께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서책에서 그것에 대해 찾아보시더군요.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하여 이것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했듯 시전에서의 소동에 강좌맹 종주가 연관되어 있음을 그 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고, 때문에 상단에서도 강좌맹에 해결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온 것이니까요. 결국 종주께서 택한 방법은 랑야각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린신을 불러주게."


  린 공자께서 꽤나 의기양양하게 방에 들어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은 종주의 화를 돋우는 역할을 했고요.


  "그래, 강좌맹 종주께서 랑야각 소각주에게 답을 구하고자 한다고?"


  종주께선 상단에서 보내온 서찰을 린 공자께 던지셨습니다. 린 공자는 그러한 종주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발치에 떨어진 서찰을 주워서 읽으셨어요.


  "교역 날짜는 정해져 있고, 예서 마가다국까지 다녀올 시간은 없네. 그러나 랑야각이라면 답을 줄 수 있겠지?"


  린 공자께서 당당하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이시기에 저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허나, 자네도 알지 않나? 답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값을 지불해야지."


  음……. 양 사형께서 이를 어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지껏 린 공자께선 종주께 랑야각의 지재를 무상으로 제공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예, 물론 값을 지불하는 것이 맞지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처럼 갑자기 돌변한 린 공자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 때에는 린 공자의 잘못으로 종주께서 난처해진 것이온데, 평소에는 무상으로 지재를 내어주시던 분이 이번에는 값을 받겠다 하시니…….


  "린 공자, 어찌 값을 받는다 하십니까? 이제껏 값을 받지 않으셨잖아요. 게다가 종주는 린 공자의 정인이 아닙니까!"


  너무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린 공자께 언성을 높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린 공자께선 아랑곳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무얼. 본래 이리 하는 것이 맞지!"


  린 공자께선 심지어 늘 지니고 다니시는 그 섭선을 들어 제 머리를 치셨습니다. 아아, 전 괜찮아요. 그냥 톡 건드리는 정도였으니. 다만, 말씀 드렸듯 그 태도가 문제라는 겁니다!


  "잘못은 린 공자께서 하셨으면서 어찌…!"
  "낭자는 대체 누구 편인가?"


  저와 린 공자가 티격태격 하자 결국 말리고 나선 것은 종주였습니다. 어찌되었든 문제는 해결해야 했으니 종주께선 값을 치르실 작정인 것 같았어요.


  "얼마를 주면 답을 내어줄 텐가?"
  "내 특별히 자네에겐 금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도록 하지. 허나, 그 전에……."


  연인 사이에는 눈빛으로도 대화가 된다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는지, 두 분이 눈짓을 주고받으시더니 종주께서 저더러 나가보라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방을 나섰는데, 잠시 뒤에는 린 공자까지 방에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까! 린 공자께서 방에서 나오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그 틈에서 서책이 날아왔으니 쫓겨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지요.


  "흥! 그럼 어디 내 도움 없이 방법을 찾아보게! 시일 내에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린 공자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사라졌습니다. 나는 얼른 종주의 방으로 들어갔어요. 종주께선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리고 계셨어요. 성을 내신 탓인지 낯빛이 붉었던 것도 같습니다.


  "대체 린 공자께서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종주의 답을 듣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지요. 종주께서 호흡을 가다듬고 평소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으실 때까지요.


  "그것이……, 금전은 아니오나 소생이 행하기에는 다소……."


  종주의 입에서 아주아주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습니다.


  "비류에게 하듯 공작 춤이라도 추라고 하셨답니까?"


  나는 종주께서 웃으실 줄 알고 농담조로 건넨 말이었는데, 결과는 정 반대였어요. 종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짙어진 겁니다.


  "공작 춤과는 전혀 다른 것이나, 행위 자체가 어려워 못 하는 것이 아니고 구태여 하고 싶지 않은 종류라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종주께서 비록 린 공자를 쫓아내셨지만, 나는 그 분이 내릴 결정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어요. 문제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으니 결국 그 하기 싫은 무언가를 수락하실 것이 자명했지요. 실제로 그리 하셨습니다.


  "아직 어리신 소저께 드릴 말씀은 아니오나……. 소생, 금일 밤은 침수에 드는 것이 두렵습니다."










***










  "잠깐만요, 낭자. 종주께서 정말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랑야각에서 온 사내가 강좌맹 소녀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사내의 낯빛이 다소 붉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낭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고요?"


  소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미간을 좁히며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사형도 그렇고, 종주고 그렇고 나를 너무 어린 아이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내 비록 체구가 작고, 굳이 따지자면 그리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나, 그래도 알 것은 다 아는 성인입니다."


  사내가 웃음 지으며 사죄하였고, 소녀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였으나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강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만, 사형께서도 알다시피 상세한 것은 종주와 린 공자, 두 분만 아시는 일이니 제가 아는 것 역시 거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다음날 전일에 발생한 문제는 바로 해결 되었지요."


  소녀는 빈 찻잔에 다시금 차를 채워 손에 들었다.


  "헌데, 소각주께서 내어주신 방법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사내의 물음에, 소녀는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듯 그 교역품이라는 것부터 처음 보는 것이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 일을 수습하는 데에 동원되지 않았기에 해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해법을 시행하는 동안, 저는 침상을 벗어날 수 없게 된 종주의 말벗을 해 드리고 있었으니까요."


  소녀가 말을 마칠 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던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 소리를 쫓았다. 시선 끝에 선 이는 린신이었다.


  "랑야산으로 돌아갈 것이니 채비를 하여라!"


  꽤나 골이 난 목소리였다.


  "예? 이리 갑자기 말입니까?"


  소각주의 수하는 뜻밖의 이야기에 얼른 몸을 일으켰다. 반면, 소녀는 린신의 그러한 태도가 익숙한 듯 가만히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을 뿐이었다.


  "또 종주와 다투신 게지요. 양 사형, 아마 조금 가다가 다시 돌아오게 될 터이니 행장을 전부 꾸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러자 린신은 부러 발을 쿵쿵거리며 소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안 돌아올 걸세!"


  하고 소리친 뒤 발걸음을 돌렸다. 소녀는 오전 중에 비류와 나란히 앉아 린신이 약재를 분류하는 것을 도왔던 일을 떠올렸다. 린신이 매장소를 위해 달이는 탕약은 평소 매장소가 먹는 것과는 들어가는 약재의 종류가 조금 달랐다. 그 약재의 양으로 볼 때, 적어도 탕약이 이틀 치는 나올 것이었다. 린신은 항상 매장소에게 줄 탕약을 손수 달였으니 남은 약재들로 탕약을 달이기 위해서라도 얼마 못 가 걸음을 돌릴 것이 자명했다.


  "일단은 소각주를 따라가세요, 사형. 전에도 한 번 저러신 적이 있는데, 금세 돌아오시긴 하지만 어쨌든 떠나긴 떠나시니까요. 밤중에 다시 뵙도록 하죠."


  그것은 린신이 밤에는 강좌맹 본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정말로 린신은 멀리 가지 못 하고 걸음을 돌렸고, 새카만 하늘에 하얀 달 하나가 떠올랐을 즈음 다시 강좌맹 본원의 대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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