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매랑가에서 판매한 웹재록 회지 <새벽의 매화> 수록 단편 '비록(悲錄); 슬픈 기록'입니다.

* 랑야방 흑버전 합작에 참여했던 글로, 흑린신이 등장하는 린매입니다.

* 발간된 회지 원고와 내용은 동일하나, 웹에서 읽기 편하시도록 문단 간격을 조정했습니다.

* 트리거 요소: 신체 절단








비록(悲錄); 슬픈 기록






  랑야각 소각주가 세상만사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강호인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소각주가 단 한 사람에게만은 정 반대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 역시 강호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었다. 평소 소각주의 성정으로 미루어 한 사람에게 단순한 관심 이상의 애정을 쏟아 붓는 것은 가히 놀랄 만한 일이었으나,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나면 누구라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것이 없어 세상을 쉬이 비웃어 버리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 사내가 제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는 상대는 다름 아닌 강좌맹 종주 매장소였다. 무공 하나 하지 못 하는 몸을 하고서 오로지 뛰어난 지략으로 강호를 손에 쥔 랑야방수 기린재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강좌 지역에서조차 그 모습을 실제로 본 이가 드물다는 신비로운 인물.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난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입을 모아 매화 향이 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제 아무리 오만한 소각주라 해도 이만큼 흥미가 동하는 이는 본 적이 없었으리라.



  “-라고들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린신은 대 자로 누운 채 고개만 돌려 제 앞에 앉은 매장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매장소는 질문에 답을 하기에 앞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린신이 드러누워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랑주의 강좌맹 본원 내에서도 가장 깊숙이 위치한 매장소의 처소였다. 감히 그런 곳에서 편히 등을 대고 누워서 빈둥거릴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된단 말인가.



  “틀린 얘기는 아니지 않나. 자네가 세상에 관심이 없는 것도, 내가 바깥을 자주 돌아다니지 않아서 오히려 더 주목을 받게 된 것도.”



  매장소의 답을 들은 린신은 입 꼬리를 당겨 웃으며 몸을 빙글 돌려, 이번에는 엎드린 자세로 매장소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세상사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인 이 몸이 자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어떤가. 또, 내가 관심을 보이는 인물이 매장소라고 하면 모두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장소는 들고 있던 서책을 덮어서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여 저를 바라보는 린신과 시선을 맞추었다.



  “자네는 날 은애하지.”



  의기양양하게 뱉는 매장소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린신의 입 꼬리가 조금 더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손이 매장소의 옷깃을 잡아끌었고,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자네도 날 은애하고.”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린신은 매장소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였다. 매장소는 낮은 소리로 웃더니 서안을 옆으로 밀어두고 린신의 등허리를 베고 누웠다. 린신이 제 허리께로 손을 뻗자 매장소의 손이 순순히 잡혀왔다.



  “난 이기적이야. 자네는 아둔하고.”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이야기였다. 매장소에게 아둔하다는 말을 들은 이는 그 오만한 랑야각 소각주가 아니었던가.



  “알아.”



  린신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 이야기를 쉬이 수긍했다.



  “나는 나 좋을 대로 자네에게 기대어 애정을 나누고, 또 다시 나 좋을 대로 떠나가 버릴 텐데.”



  매장소의 낯빛에 슬픔이 섞여들었다.



  “알아.”



  이번에도 린신의 대꾸는 매우 간결하였다.



  “그런 나를 이리도 연모하는 자네는 정말로 아둔해.”



  그 말에 린신의 입가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과연 내가 그리 아둔할까? 린신은 그 말을 목 뒤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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