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한 가운데에 높이 솟은 A타워의 최상층, 토니 스타크의 랩은 며칠째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 공간의 주인이 며칠째 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 시기'에는 자비스의 집요한 잔소리도 토니를 재울 수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침실로 들여보내려 노력했으나, 그 때마다 '뮤트'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답답하게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비스의 입을 막은 뒤의 토니는 한층 더 위태로워 보였다. 결국 자비스는 최선—토니를 재우는 것—을 포기하고 차악을 택했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밤새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여기를 초록색으로 칠하면 어떨 것 같아?"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토니가 딱히 그 시간에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잠을 잘 시간에 자지 않고 한다는 점만 빼면 아주 평범한 취미활동이었다.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만든다거나, 하다못해 자비스가 조종하는 아머와 다트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의 취미활동은 자동차 튜닝이었다. 토니는 자신이 소유한 수많은 슈퍼카 중 하나를 골라 도색을 새로 할 참이었다.



  "헐크가 연상되는군요."

  "바로 맞췄어. 이거 타고 닥터 배너랑 드라이브라도 할까 봐."

  "그렇다면 보라색도 조금 필요하겠네요."



  자비스는 초록색 바탕에 보라색 선으로 데코레이션 된 여러 개의 샘플을 띄웠다. 토니는 그것들을 둘러보다가 몇 개를 골라 더하고, 빼는 작업을 반복하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디자인이 나왔는지 활짝 웃었다.



  "이거면 좋겠어. 어때?"

  "배너 박사님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요즘 박사는 그 초록 친구랑 꽤 친해진 모양이니까 말야."



  토니가 손짓을 해서 눈 앞에 놓인 도색 전의 자동차 위에 완성된 디자인의 홀로그램을 겹쳐 놓았다. 자비스는 로봇들을 움직여 도색 작업을 시작했다. 토니는 큰 머그잔에 진하게 내린 커피를 가득 담아서 의자에 깊게 기대 앉았다.



  "자비스, 오늘 날짜가 5월... 며칠이지?"

  "자정이 지났으니 29일입니다, sir."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토니는 허공을 향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올해도 시간이 잘 안 가네."



  자비스는 왜 하필 매년 이 시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지, 토니에게 묻고 싶었다. 랩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는 것은 토니가 밥 먹듯 하는 일이긴 했지만, 그것은 항상 할 일이 명확하게 있을 때에만 그랬다. 이렇게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일부러 잠을 피하는 것은 매년 5월 말쯤에만 있는 일이었다. 토니는 이쯤에는 날짜를 확인할 때마다 스치듯 어두운 표정을 지었고, 늘 토니만 바라보고 있는 만큼 이를 놓칠 리 없는 자비스는 차마 이상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주무시는 것을 권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제 입을 막아버리시겠죠."



  비꼬는 듯한 자비스의 말에 토니는 피식 하고 웃었다.



  "그게 그렇게 싫었어?"

  "보통 저는 명령에 대한 호불호는 없습니다만, 매년 이 맘 때에는 그 명령 이후의 주인님이 상태가 심히 걱정스럽기에."



  토니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커피를 몇 모금 더 마신 뒤, 마른 세수를 했다. 그가 한층 더 피곤해진 눈으로 점점 초록색으로 변해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다가 다시 허공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을 때에는 꽤 긴 정적이 흐른 뒤였다.



  "자비스, 나는 어릴 때부터 생일을 거의 혼자 보냈어."



  그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사용인들이 생일상을 차려주긴 했지만, 그들은 그저 맛있는 음식과 케이크만 준비해줄 뿐이지, 함께 해주지는 않았어.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생일 파티였지. 결국 얼마 못 가서 그마저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그런 것들을 준비하지 말라고 해 버렸어."



  토니의 시선이 다시 자동차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본다기보다는 그저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 쪽을 택한 듯 했다.



  "자라면서는 친구도 하나 없었고, 가족들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내 생일이 언제인지 잊어버릴 정도로 그 날을 의미 없게 보냈어. 그래도 최근 한동안은 페퍼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고."



  자비스는 토니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토니도 굳이 자비스에게 잘 듣고 있다는 확인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별로 아쉽다거나 기분 나쁘진 않아. 남들에겐 생일이 특별한 날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 특별하긴 하네. 조금 다른 의미로."



  어째서인지 토니의 심박수가 갑자기 올라갔고, 토니는 호흡을 고르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멈춰야 했다.



  "……자비스. 생일날에 부모에게서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토니는 어린 시절 언젠가의 생일을 떠올렸다. 그 날은 운 좋게도 간만에 하워드가 집에서 쉬고 있었고, 토니는 이 기회에 그간 자신이 만든 것들을 보여주고, 생일 축하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책상 아래에 놓아둔 발명품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 중 토니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자동으로 플라스틱 총알을 쏘는 작은 로봇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토니는 그것을 하워드에게 보여 주었다가, 생일 축하는커녕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토니의 로봇은 이미 하워드의 손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좀 과격한 반응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아버지는 항상 '캡틴 아메리카는 내가 만든 것 중 유일하게 옳은 것'이라고 했었대. 그를 부자로 만들어 준 무기들은 옳지 않은 것들이었지. 근데 그걸 어린 자식이 따라서 만들고 있는 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겠어?"



  자비스는 토니의 심박수가 조금 더 올라간 것을 감지했다.



  "나도 그래. 나를 닮을까 봐 아이가 생기는 게 두려워.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를 보고 얼마나 소름 끼쳤을지 아주 잘 알겠는데……."



  토니는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린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자비스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토니를 불렀다.



  "Sir?"

  "……미안. 미안해, 자비스. 옛날 생각이 나서……."



  토니의 목소리는 어느 새 잔뜩 젖어 있었다.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토니가 입을 열었다.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기억은 끔찍해. 그리고 어쩌면 나는 정말로 태어나면 안될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나 때문에 죽은 사람도 많고, 상처 받은 사람도 많고……."



  토니는 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번에 남김없이 다 들이켰다.



  "매년 이 맘 때, 생일을 앞두고 잠을 자지 않는 건 말야, 자비스. 눈을 감으면 그 날의 아버지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파해야 했던 사람들이 보여서 그래. 잠들면 꿈에서 나를 괴롭혀. 일종의 트라우마지."



  토니는 커피를 더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랩 한 켠에서는 자동차의 도색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자비스는 말이 없었다. 토니가 머그잔을 새로 내린 커피로 가득 채우고, 다시 그것을 절반 정도 마실 때까지 랩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Sir,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비스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뭔데?"

  "다시는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토니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잠시 뜸을 들이던 자비스가 말을 이었다.



  "주인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게 된 것도, 지금 이 순간,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토니 스타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정되었던 토니의 심장이 다시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저의 유일한 존재의 이유는 당신입니다, sir."

  "자비스."

  "그러니까 부디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주인님은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토니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자비스는 처음으로 자신이 몸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울고 있는 주인의 작은 등을 감싸주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토니는 결국 울다 지쳐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고 말았다. 자비스는 아머를 움직여 토니를 침실에 데려다 눕혔다. 그러던 중에 살짝 깬 것인지, 잠꼬대인지 토니는 눈을 감은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마워, 자비스……."



  그 뒤로는 깊은 잠에 빠진 듯, 토니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자비스는 침실의 불을 끄면서 말했다.



  "Happy birthday, sir. 오늘은 부디 좋은 꿈을 꾸시기를."



  그 날, 토니는 아주 오랜만에 제 생일을 앞두고도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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