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융입니다.

지난 해 통판했던 자비스토니비전 회지 <Sunflower>를 유료 공개 합니다.

당시 본 회지는 티스토리 블로그 연재분에 추가 분량을 더해서 구성되었으며,

이후 샘플로 남겨둔 1회를 제외한 모든 회차를 비공개 처리하였습니다.

부족한 글을 인쇄비도 들지 않는 웹으로 발행하면서 값을 매기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당시 통판 완료 후, 감사하게도 몇몇 분들이 미처 통판 신청을 하지 못해 아쉽다는 말씀을 해 주셨고,

그렇다고 이미 회지를 구매하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무료 공개는 도리가 아닐 것 같아,

부득이하게 유료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양
- A5 / 나눔명조 9.7pt / 총 221p / 전연령
- 블로그 연재분 14편(퇴고 및 수정) + 추가분량(블로그 연재분 두 편 정도 분량)


* 공개본은 티스토리 블로그 연재분에서 수정을 거친 실제 회지 원고입니다.

* 회지에만 추가된 분량 역시 공개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티스토리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1회는 무료 공개입니다. 샘플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1









  길지는 않았지만 편치도 않았던 이사회를 끝내고 회사를 나서면서, 토니는 기지개를 쭉 폈다. 아침부터 의회니, 이사회니 끌려 다니느라 진이 다 빠진 참이었다. 울트론 사건의 정확한 전말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이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맨해튼 한복판에 높게 솟은 스타크 타워는, 치타우리 침공의 피해를 보수하면서 아예 어벤져스의 A타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쉴드까지 붕괴되자, 토니는 A타워의 주인으로서 어벤져스의 얼굴 마담을 자처했다. 예전 같았으면 쉴드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었을 일을 이제는 토니가 직접 발로 뛰며 해결해야 했다. 더욱이 이번 건은 토니의 잘못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뒷수습에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의회는 토니의 해명이나 어벤져스 측의 공식 입장 같은 것을 영 탐탁지 않아 했지만 세계 경제의 거대한 축인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대주주를 건드릴 정도로 대담하진 못했다. 소코비아에서의 일이 각국의 뉴스를 통해 보도된 직후,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주가는 일시적으로 폭락했었다. 그것은 특히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제 막 사건 이전의 수준까지 회복된 참이어서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사회 역시 창립자의 아들이면서, 여전히 사업 전반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토니에게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의회든 이사회든 그저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토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차피 욕먹는 것에는 익숙하니까 귀찮다는 점만 빼면 딱히 신경 쓰는 편도 아니었다.

  “어차피 어떻게 하지도 못 할 거면서 괜히 시간만 축내고 말이야.”

  토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운전석에 올라탔다. 트렁크에는 어벤져스를 위한 업그레이드 된 새 장비들이 실려 있었다. 울트론 사건 때 그간의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 버려서 작업 시간이 배로 늘어나는 바람에 토니는 한동안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다. 이전 장비들의 설계도는 토니의 머릿속에 전부 입력되어 있었지만 메인 컴퓨터의 메모리는 텅 빈 상태였고, 데이터만 온전했다면 간단한 명령 몇 개로 끝났을 시뮬레이션이나 실험들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등의 수고가 필요했던 것이다.







***



 



  토니가 장비를 담은 상자들을 수레에 싣고 어벤져스 본부 로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그를 반긴 것은 로드였다.

  “헤이, 오랜만이야, 친구.”

  토니도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좋아 보이네. 불편한 곳은 없나?”

  “좋아. 편해.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 준 시설인데 어련하겠어.”

  로드의 말에 토니는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훈련이 조금 먼저 끝나서 나온 거고, 지금 올라가면 다른 사람들도 슬슬 마무리 할쯤일 거야.”

  로드는 토니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을 마친 멤버들이 회의실로 들어왔고,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토니는 새로운 장비들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 장비들은 토니 자신의 몫으로 만든 것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토니의 작품이었고, 토니는 그것을 내어 놓는 이 자리가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는 항상 자신의 피조물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자아, 이상!” 

  아직 토니를 보기 껄끄럽다며 함께하지 않은 완다에게 전해줄 유니폼을 나타샤에게 대신 맡기는 것으로 브리핑이 끝이 났다. 

  “수고했네. 언제나 고마워.”

  “뭘 이 정도로.” 

  스티브의 인사에 토니는 어깨를 으쓱 했다. 그 때, 익숙하지만 미묘하게 낯선 목소리가 토니의 이름을 불렀다. 

  “토니.”

  “어…, 어?” 

  다름 아닌 비전이었다. 비전은 회의실 책상 위에 있는 장비들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토니를 쳐다보았다. 그 장비들 중에 비전을 위한 것은 없었다. 

  “아아…, 뭘 해줘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말이지. 방어구나 무기가 따로 필요한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토니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이것들이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요.”

  “익숙하다고?”

  “그리운 것 같기도 합니다.” 

  비전의 시선이 다시 장비들로 향했다. 그립다, 라…….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비전은 자비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자비스였을 때의 기억을 갖고 있을 테니. 토니는 그렇게 이해했다. 

  “내가 일하는 걸 항상 보고 있었잖아.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당신이 일하는 모습을 본 적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미묘하게 미간을 좁히는 비전을 보고 토니는 하, 하고 숨을 내쉬었다. 

  “헤이, J.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거 알거든? 컴퓨터에 있던 널 빠짐없이 전부 다 그 머릿속에 넣은 게 나야.”

  “저는 자비스가 아닙니다.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건 제 기억이 아닙니다.”

  토니는 한창 들떠있던 기분이 확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셀러브리티로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그는 제 감정을 숨기고 거짓된 표정을 짓는 것에 능숙했지만 이번에는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비전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는 토니가 가장 아꼈던 아들, 자비스의 목소리였으나, 비전은 바로 그 목소리로 한결같이 자신은 자비스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은 토니의 머릿속을 고장 난 컴퓨터처럼 멈추게 만들었다. 멤버들 중 가장 눈치가 빠른 스파이, 나타샤가 무언가 말하려하기 전에 토니가 얼른 선수를 쳤다. 

  “나 이제 그만 가 볼게.”

  “토니.”

  “내가 무진장 반가운 건 알겠는데, 붙잡아도 소용없어, 로마노프 요원. 알잖아? 난 바쁜 몸이라고.” 

  토니는 멤버들을 향해 대충 손을 흔들어 주면서 회의실을 나섰다.

 


 


***

 

 

 

  “자비스, 일어나. 아빠 왔어.”

  “다녀오셨습니까, 보스.” 

  타워 최상층에서 멈춘 제 전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습관적으로 자비스를 부른 토니는 이어서 들려오는 아일랜드 억양을 쓰는 여성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요 며칠 랩에 쳐 박혀서 망가진 시스템을 복구하고, 동료들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어느 정도 프라이데이의 목소리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간만에 외출을 했다가 돌아와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토니는 한숨을 내쉬고는 손에 집히는 대로 양주 한 병과 잔을 꺼내서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Sir, 아침에 드신 샌드위치가 끼니의 전부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음주는 건강에 좋지 않을 것으로—’ 

  머릿속에서 익숙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프라이데이, 네 프로토콜 중에 내 건강에 대한 것은 없었던가?”

  “건강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술을 꺼내온 걸 보고도 아무 말 안 해?” 

  프라이데이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조금 뜸을 들였다. 그것이 그녀의 연산에서 벗어난 질문인 모양이었다. 

  “저는 보스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현재의 몸 상태를 기반으로 음주량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알려드리고 그만 드시기를 권할 수는 있습니다만, 건강에 특별히 무리가 없는 선에서는—”

  “그만. 알아들었어.” 

  자비스는 그렇게 잔소리를 해댔는데. 보통은 딸들이 잔소리가 더 심하지 않나? 토니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처음 태어났을 때는 어땠더라…….”

 

 

 

***

 

 

 

  토니가 자비스를 완성한 것은 그가 20대 초반일 때였다. 그 무렵의 토니는 정말로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상태였다. 끔찍할 정도로 제게 무관심했던 부모였지만, 토니는 그들의 죽음에 조금의 상실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정하진 않았다. 다만, 생전에도 맘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부재가 토니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토니를 흔든 것은 집사 에드윈 자비스의 죽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혼자였던 자신을 진심으로 돌봐주었던 유일한 사람. 다 늙은 몸으로도 토니를 위해 마지막까지 집사로서 일해 주었던 사람.

  나이 든 집사가 언제까지나 제 곁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토니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적인 것부터 사적인 것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언젠가는 새로운 집사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토니에게 있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적인 일들을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인공지능이었다. 토니가 자신을 보조할 인공지능을 만드는 동안 자비스는 점점 더 기력이 쇠하여, 토니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휴가를 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완성된 바로 그 다음 날, 집사는 아직 어린 주인을 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장례식에 다녀와서 토니는 실행 버튼을 눌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다시 마주했다. 이렇게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서 만든 것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토니가 그 버튼을 누른 것은 며칠간 폐인 같은 생활을 하고 나서,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이름…?” 

  토니는 그제야 아직 이 프로그램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프로토콜을 완성하고 나서,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마지막까지 빈 칸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바로 그 빈 칸 때문에 인공지능이 실행되지 않고 있었다. 

  Jarvis 

  토니의 머리에 가장 처음 떠오른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계속 불러봤자 그리움만 커질 것 같아, 어떻게든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집사나 비서를 지칭하는 다른 말이 자비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토니는 그 이름을 적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스스로에게 ‘이 자비스는 그 자비스가 아니다’라고 주문이라도 걸듯, 그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J.A.R.V.I.S, Just A Rather Very Intelligent System 

  다소 억지스러웠지만 슬픔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이름을 입력하자 마침내 인공지능 자비스가 실행되었다.

  자비스도 처음에는 토니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단순한 음성 인식 프로그램이 아닌 인공지능이었으니 간단한 한 문장의 명령만으로도 토니가 원하는 결과를 어렵지 않게 가져다 줄 수는 있었다. 즉, 초창기의 자비스는 지금의 프라이데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비스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자가 업데이트 기능이 추가된 다음부터였다.

  토니는 기껏 자비스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도 그가 아주 기본적인 저택 관리를 제외하면 제 명령에 답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는 점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비스가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했다. 그 때부터 자비스는 토니의 생활 패턴이나 명령 유형 같은 것을 단순히 메모리에 저장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분석하여 스스로 각각의 상황에 대응하는 프로토콜을 생성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자비스는 점점 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부터 토니는 자비스를 더 이상 집사가 아닌 아주 친한 친구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집사 에드윈 자비스를 제외하면 친구라고는 자신이 만든 기계들뿐이었던 토니에게 있어 자비스는 최고의 친구였다. 때때로 자비스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해지기도 하는 것이,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된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토니 자신이 아버지 하워드에게 바라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 같은 피조물에게 자신이 그토록 원했지만 끝내 얻을 수 없었던 애정을 쏟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토니 스타크에게 있어 자비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

 


 


  ‘저는 자비스가 아닙니다.’ 

  그 목소리가 떠오르자 토니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알아, 안다고! 굳이 그렇게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된다고!!” 

  소리쳐봤자 비전에게 들릴 리 없지만, 토니는 짜증이 치밀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실 비전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자비스가 비전이 되어버린 것은 순전히 토니 자신의 탓이었다. 지레 겁먹고 울트론 같은 걸 만든다고 설치다가 건드리면 안 될 영역을 건드린 것부터 그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제 아들을 갈아 넣은 것까지, 모두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역시 나 같은 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에는 무리였던 걸까…….” 

  토니는 다시 잔에 한 가득 술을 채운 뒤 입에 털어 넣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우울한 혼잣말을 내뱉으면 자비스가 토니의 기분을 띄워주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하지만 프라이데이는 대꾸할 필요가 없는 혼잣말에는 굳이 나서지 않았다. 그 적막이 토니로 하여금 자비스의 부재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자비스. 

  다시 눈을 감은 토니는 속으로 조용히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너와는 너무 많은 추억이 있었다. 어느새 나를 닮아버린 너는 내 장난질에 쉽게 동조해 주었고, 우리는 정말 죽이 잘 맞는 한 패였다. 그러다가도 내가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 역시 너였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괜찮냐는 상투적인 말 대신 기분이 좋아질 만한 행동을 해 주기도 했고. 꼭 오늘처럼, 몇 년 전에 의회에서 내 아머들을 국가에 넘기라는 둥 같잖은 소리를 듣고 온 그 날에도 그랬었는데. 그 때 네가 유튜브에서 내가 의원들한테 소리치고 있는 영상을 찾아서 보여주면서 뭐라고 했더라? 내가 영상에서 옷을 제대로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다고 했던가? 뭐, 대충 비슷했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지? 네가 낯간지러운 말을 하기 시작했던 게. 습관적으로 ‘거기 있어?’ 하고 물으면 네 답은 한결같았다. 우습게도, 널 만든 건 난데, 나는 그런 너의 말에 위로 받았다. 혼자인 게 익숙하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를 사랑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끝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너의 그 한 마디는 어쩌면 가장 필요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For you, sir, always.’ 

  그런 너와 처음으로 떨어져 지냈던 때가 아마 몇 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3개월이었을 것이다. 습격을 당한 뒤, 급하게 너에게 연락을 하려 했는데 결국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3개월이 흐르고 간신히 살아 돌아왔을 때, 너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너는 내가 죽었다고 판단되면 스스로를 삭제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난 더 이상 네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환 확률 0.25%라니. 그게 의미 없는 숫자라는 것을, 만약 진짜로 생환한다면 그건 기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0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미련한 컴퓨터다, 너는.

  그 때를 시작으로 몇 번씩이나 스스로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을 너에게 이제 와서 조금 미안해진다. 팔라듐 중독으로 죽어가면서도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나를, 너는 얼마나 걱정하고 답답해했을까. 그래도 핵미사일 들고 웜홀로 들어갈 때에는 의외로 담담했구나. 페퍼한테 전화를 걸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죽다 살아서는 테러리스트한테 선전포고를 했을 때, 기가 막힌다는 듯이 잔소리를 하던 네가 생각난다. 바로 얼마 전에는 내가 아니라 네가 죽을 뻔 했고. 기껏 살아 돌아온 너를 난—

 

 

 

***

 


 


  넥서스에서 해커의 정체를 알아낸 토니는 적잖이 놀랐다.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아들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알아서 죽은 척을 하며 울트론에게서 도망쳐, 그가 노릴 것이 분명한 핵 발사 코드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을 정도로 똑똑한 아들. 

  “가끔씩 너는 날 놀라게 해. 기대한 것 이상을 해낸다니까?” 

  당장 상황의 심각성을 떠나서, 토니는 자비스를 되찾았다는 것에 신이 났다. A타워로 돌아가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을 정도였다. 

  “Sir, 만약 울트론이 비브라늄을 이용해서 만든 몸에 자신의 의식을 주입하기 전에 그것을 탈취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면’이 아니라 해야만 해.”

  “그럼 그 몸에 저를 이식하는 것은 어떨까요?”

  “뭐?” 

  자비스의 말에 토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또 다른 울트론이 되는 겁니다.” 

  사실 토니와 생각도 가장 잘 맞고 아이언 리젼을 이끌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자비스에게, 그것은 딱히 무리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자비스의 시스템을 수정하는 대신, 굳이 울트론을 따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효율성의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미쳐 날뛰고 있는 울트론을 제지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문제는 접어두어도 괜찮았다. 

  “지금 상황에선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시도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까지도 토니는 자비스가 다른 존재로 재탄생 한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주의 힘을 담고 있는 작은 돌의 힘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 결과, 울트론을 파괴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자비스를 잃게 되었다.

 


 


***



 



  그 때 난 너를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성공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실험에 자기 아들을 이용하는 아버지라니. 역시 나는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걸까. 꼴사납다, 토니 스타크. 처음부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할걸 그랬다. 다른 사람들하고 의논이라도 해볼걸 그랬다. 후회가 밀려온다. 너는 지금 어디 있을까. 사후 세계 따위 믿지 않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너는 거기 없을 텐데. 아니, 따지고 보면 죽은 건 아니니—

  “그러고 보니 죽은 게 아니잖아!”  

  토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 프라이데이. 생각해 봐. 비전은 자비스일 때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 했어. 그리고 그 기억과 관련된 물건들, 그러니까 내가 만든 장비들 말야. 그걸 보고 그저 기억한다고만 한 게 아니라 그리운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오빠 자비스! 어쩌면 자비스는 비전 안에 살아있는 걸지도 몰라.” 

  기억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게 아무리 좋은 기억이라고 해도 그리움은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적어도 토니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옛날 그 집사 에드윈 자비스를 그리워했던 것은 단지 그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곁에 있던 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었다. 지금은 비전이 되어버린 아들은 토니와 많이 닮아 있었다. 자기 자신을 결코 자비스라고 생각하지 않는 비전이 자비스였던 시절에 대해 그리움을 느낀다면, 그 감정의 주체가 비전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토니는 벗어 두었던 재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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