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건……."



  린신은 노각주가 데려온 것—사실은 사람이겠지만—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린신의 시선 끝에서는 온 몸이 새하얀 털로 뒤덮인 괴인이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거칠게 으르렁대고 있었다.



  "화한독입니까?"



  아들의 물음에 노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린신은 가까이 다가가 괴인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린신을 경계하여 노려보기만 하였을 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린신이 힐끗 시선을 내리자, 있는 힘껏 주먹을 쥐고 있는 그 자의 손이 보였다. 그는 온 몸의 힘을 그 양 손에 모아 꼭 쥐는 것으로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참고 있군. 대단한 의지야. 보아하니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괴인의 입에서 괴로운 듯한 신음이 터져 나오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이 린신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온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다음 행동을 하려는 몸을 그의 이성이 죽기 살기로 붙들고 있다는 것을, 린신은 잘 알았다.



  "린신."



  노각주는 아들에게 약초를 다듬을 때 쓰는 작은 칼을 내밀었다. 린신은 아무런 불평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괴인에게 붙잡힌 자신의 팔목을 그어 피를 내었다. 괴인은 괴로운 듯 고개를 돌렸다.



  "마셔. 그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야 치료를 하지 않겠어? 나도 의원이니 개의치 말고."



  괴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린신을 바라보았다.



  "나이 드신 아버지보다야 내가 낫지. 제대로 된 치료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것 역시 네 녀석 몸에 든 독을 다스리는 약이다. 치료의 일환이니, 어서."



  잠시 망설이던 괴인은 결국 린신의 팔에 난 상처를 물었다.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치악력에 린신은 얼굴을 찡그렸다. 독은 겉모습을 짐승처럼 바꿔 놓을지언정 괴력을 주지는 않았다. 필시 그 힘은 본래 그가 지닌 힘일 것이었다.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화한독의 독기를 일시적으로나마 진정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짐승의 피로도 가능하지만 가장 효능이 좋은 것은 사람의 피였다. 그래서 화한독에 중독된 이는 본능적으로 사람의 피를 탐했다. 그 충동을 억누르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한 점에서만 보더라도 이 괴인의 내공은 보통 이상이었다. 거기에 강한 힘까지, 린신은 앳되어 보이는 괴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괴인이 정신 없이 피를 마시다가 물러났을 즈음, 린신의 팔에 난 작은 상처는 더 크게 벌어져 꽤 흉측한 꼴이 되어 있었다. 내공이 상당한 그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괴인은 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생각보다 더 오래 참아온 모양이었다.



  "임섭 장군을 기억하느냐."



  결국 주저 앉아 제 팔을 지혈하고 있는 린신을 향해 노각주가 물었다. 린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는 임섭 장군의 아들, 임수다. 너도 알다시피 장군의 적염군은 기왕과 함께 모반 혐의를 받고 몰살 당했지."



  그러자 임수가 사나운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노각주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임섭 장군이 반역자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다만, 진상이 어떻든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임수는 주먹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노각주는 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아이를 네게 맡기마. 화한독은 맹독 중의 맹독이며, 방금 전 네 피를 빨아 먹을 때의 모습을 보니 그 정도도 심한 것 같구나. 치료를 위해서는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될 터인데, 나는 저 아이에게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으니."



  린신은 어느새 괴로운 표정으로 쓰러져버린 임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때부터 내가 꼬박 1년을 장소를 살리는 데에만 매달렸다니까? 그런데도 저 놈은—"



  린신의 이야기를 듣는 려강과 견평의 얼굴에 점점 난처한 기색이 비쳤다. 그 이야기는 지난 몇 년간 그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장단을 맞춰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려강, 견평. 비류가 놀다가 서고에 있는 책장 하나를 넘어뜨렸으니 자네들이 가서 정리 좀 하게."



  때마침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준 것은 다름 아닌 매장소였다. 두 사람은 부리나케 그 곳을 벗어났고, 대신 매장소가 린신과 마주 앉았다.



  "대체 그 이야기만 몇 번째인가? 듣기 싫어하는 거 안 보여?"



  매장소의 핀잔에 린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생명의 은인을 박대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여기 앉아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바쁜 시기에 찾아온 사람이 잘못이지, 누굴 탓하나?"



  최근 몇 해 사이, 원래는 강호에서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방파였던 강좌맹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랑야방 순위도 무섭게 오르고 있었고, 모두가 입을 모아 다음 번에 갱신될 랑야방에서 강좌맹이 강호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좌맹은 출신을 따지지 않기에 자네가 강호에서 정착할 곳으로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을 뿐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



  화한독의 치료를 마치고 이전과는 다른 얼굴과 병약한 몸을 갖게 된 임수를 강좌맹에 들어 앉힌 것은 린신이었다. 임수는 제 아버지의 가명인 매석남을 따라 스스로를 매장소라 칭했다. 더 이상 무공을 쓸 수 없게 된 그는, 대신 뛰어난 지략으로 강좌맹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좌맹 식구들이 그를 맹주로 모시게 되었고, 그 명성은 강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가까스로 살아남아 도망친 적염군 병사들이 알아서 강좌맹을 찾아왔다. 출신을 따져 묻지 않는 강좌맹의 성격에 매장소의 명성이 더해진 결과였다. 매장소가 적염군의 적우영을 맡았던 소년 장수 임수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기꺼이 매장소의 믿음직한 수족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적염군처럼 저마다의 사정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강좌맹의 이름 아래로 모여들고 있었다. 특히, 날씨가 추워져 더 이상 길 위를 떠돌며 노숙을 하기 여의치 않은 계절이 되면 그 수가 더 늘어났고, 지금 또한 딱 그러한 시기였다.



  "그래, 무슨 일인가?"



  매장소가 손난로를 집어 들며 물었다. 린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고 웃었다.



  "의원이 환자를 보는 것 말고 용건이 또 뭐가 있겠어?"



  린신은 익숙하게 매장소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린신이 지겹게 해대는 그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화한독에 중독된 임수를 치료하여 매장소로 거듭나게 해 주었다. 다만, 그 중독의 정도가 심하여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하였기에 린신은 자주 매장소를 찾아와 그의 상태를 살피곤 했다.



  "흠……."

  "어떤가?"



  매장소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쁘지 않군."



  린신의 답에, 매장소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린신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또 몸 생각은 안 하고 멋대로 날뛴 모양이군."

  "……어디 날뛸 힘이라도 있다는가?"



  매장소는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린신은 가볍게 한숨을 뱉었다. 매장소의 성정으로 보아, 강좌로 모여드는 이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피느라 제 몸은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음은 뻔한 일이었다.



  "제발 몸 생각 좀 하게."

  "적당히 하고 있네. 그리고 조금 잘못 되더라도 어차피 자네가 살려줄 거 아닌가?"



  다소 짓궂게 웃으며 묻는 매장소를 보고 린신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지. 그렇고 말고. 죽여 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끝까지 살려내 주지."











***











  "수야!"



  막사 안으로 급히 들어오는 몽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입고 있는 갑옷은 물론 양 손과 얼굴에도 잔뜩 피가 묻어 있었지만,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임수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병사들의 함성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 우리의 승리다!"



  대유국은 일시에 사방에서 몰려들어온 적들 중 가장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앞에서는 몽지가 이끌고, 뒤에서는 임수가 지휘하는 대량제국 군대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북쪽 변방에서 대유국 군대를 모두 몰아내고 승리를 확정 지은 것은 전투가 시작된 지 겨우 두 달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이제 이 곳 주둔군을 정비하는 일만 남았군요."

  "남은 일을 마치고 금릉으로 돌아가면 다 같이 축배를 들자."



  몽지가 임수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임수는 대답 대신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승리의 기쁨에 한껏 취해 있던 몽지는 그 웃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임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몽지가 막사를 나서자, 한 켠에 서 있던 린신이 입을 열었다.



  "시간이 남았군."



  임수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밝게 웃으며 린신을 쳐다보았다.



  "어떤가? 대단한 놈이지?"



  그 뜬금없고 의기양양한 질문에, 린신은 미간을 좁혔다.



  "임수 말야. 분명 자네도 좋아하게 될 거라고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린신은 단호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임수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임수를 뒤로 하고 린신은 막사에서 나왔다. 바깥은 온통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병사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 사이를 빠져 나와 진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물가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함성 소리도 작게 들렸다.



  "좋아하게 될 리가 없지. 이미 죽은 놈을 살리자고 내 손으로 장소에게 독약을 건넨 것을."



  듣는 이 하나 없는 그 곳에서 린신은 조용히 원망의 말을 뱉었다. 그것이 죽음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며 임수로서의 마지막을 택한 매장소에 대한 원망인지, 끝내 그의 고집에 굴복하여 약을 내어 준 자신에 대한 원망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물 위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린신의 뺨을 스쳤다.



  "내가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군."



  랑야산에 있을 때에도 그리해 주지 그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을 지켜주겠다는 약조는 이런 것을 뜻한 것이 아니었다. 천수를 누릴 수 있도록 평생 네 곁을 지키다가 마침내 자연히 늙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그 날, 네가 편히 갈 수 있도록 나는 너보다 아주 조금만 더 살아 있겠노라 한 것이었다. 너를 먼저 보내고 곧장 그 뒤를 쫓아 네 손을 잡고, 황천을 함께 거닐자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 너의 마지막은 병을 못 이겨 스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걸로 자네는 행복하다 하겠지. 자네가 그러하다면 어쩌겠나.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린신은 그 자리에 선 채로 한동안 홀로 바람을 느끼다 돌아섰다. 막사로 돌아가던 중 아직 덜 녹은 눈 위를 기어가던 망할 벌레 하나를 밟아 짓이겨 놓는 것으로 화풀이를 대신했다.











  그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더 흘러갔다. 임수의 지휘 하에서 주둔군의 정비는 전투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일을 모두 마무리 지은 그 날 밤, 임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비류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괜찮은 것이오?"



  때마침 임수의 막사에 찾아왔다가 그의 상태를 알게 된 몽지가 맥을 짚는 린신을 향해 물었다.



"요점만 말씀 드리지요. 장소에 관해서는 지금 말씀 드리는 단 한 문장만 태자께 전하시면 됩니다."



  린신은 굳은 표정으로 임수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매장소는 전사하였습니다."



  순간 몽지는 눈을 크게 뜨더니 임수의 이름을 부르며 황급히 그의 코 아래에 손을 대고 숨결을 확인했다. 린신의 말과는 달리, 아직 미약하나마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있지 않소!!"

  "하지만 곧 죽습니다."



  몽지는 린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옷깃을 거칠게 틀어 쥐었다. 린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몽지를 바라보았다.



  "의원이라는 자가 어찌…!"



  몽지는 당장이라도 린신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 린신은 그의 손을 가볍게 떼어내고는 구겨진 옷깃을 단정히 정리했다.



  "이 곳으로 오기 전, 장소가 먹은 약은 빙속초로 만든 빙속단으로, 화한독을 정화하고 남은 힘을 끌어 모아 3개월 정도는 걱정 없이 버틸 수 있게 해 주지만,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독약입니다."



  린신의 설명에, 몽지는 숨을 삼켰다. 독약을 먹고서라도 전장에 나온 임수의 의지를 이해하기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린신은 그런 몽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장소는 랑야산으로 데려가지요. 강호인이 죽어서 굳이 금릉으로 돌아갈 명분은 없으니."











***











  매장소는 천근 같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익숙한 약 냄새가 풍겨왔다.



  "정신이 드나?"



  익숙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입술을 움직여 목소리의 주인을 불러보려 했지만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그것을 보며 린신은 혀를 찼다.



  "목소리를 낼 힘도 없어졌나 보군."



  매장소는 더 이상 목소리 내는 것을 포기하고 눈동자를 움직여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는 다시 린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 문제를 하나 내지. 이 곳은 랑야각이 맞을까? 아니면 자네가 죽고, 내가 그 뒤를 따라와서 극락에 있는 랑야각과 비슷한 어떤 곳에 와 있는 것일까?"



  매장소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미 죽은 것이라면 이렇게 몸이 무거울 리가 없었다. 린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는 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어. 전장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된 것 같나?"



  매장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는 분명 겨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누워있는 곳에는 화로 안에서 숯이 타는 냄새 대신 향긋한 봄 꽃 향기가 나고 있었다. 3개월의 시간밖에 없던 그에게, 봄이란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 계절이었다. 만약 봄 꽃 향기가 난다면 이 곳은 이미 이승이 아닌 것이리라.



  "뭐가 그리 심각해?"



  혼란스러워 하는 매장소를 향해 린신은 가벼운 투로 말했다.



  "자네는 빙속단을 먹고 3개월의 시간을 얻었어. 그 3개월이 끝나기 전에 피를 빼내고 열 사람의 피를 받아 채우면 화한독은 말끔히 사라지지."



  그 말이 끝나자 매장소의 눈에 원망의 빛이 서렸다. 린신이 자신에게 몰래 열 사람의 피를 먹였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린신은 또 다시 혀를 찼다.



  "애초에 양쪽 모두가 진심을 다해 피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을 텐데. 게다가 그렇게 하면 인간성을 잃는다고도 말 하지 않았나? 그래서, 자네는 지금 자신이 인간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답은 '아니오'였다. 매장소의 눈에서 원망은 사라졌으나, 대신 의문이 떠올랐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일까. 이 곳은 정말 이승이 아니란 말인가. 린신은 입 꼬리를 잔뜩 올리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게 100년도 더 전의 일이야. 랑야각은 꾸준히 다른 치료법을 찾고 있었네. 그리고 결국—"



  린신은 들고 있던 부채 끝으로 매장소의 이마를 톡 쳤다.



  "찾았지."



  매장소는 눈을 크게 떴다. 살아갈 방도가 있다고 하는데도 기뻐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놀랄 뿐이었다. 린신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한독은 한기를 완전히 누르는 순간 독소를 잃어버려. 맹독 중의 맹독이기에 그 기운을 누를 수 있는 것은 빙속초라는 또 다른 맹독뿐이지. 빙속초에 의해 한기가 모두 사라지면 두 독이 부딪치는 사이 약해진 몸이 한 순간에 빙속초의 독소에 당해 버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독을 품은 피를 모두 빼내야 하는 것이네. 하지만—"



  린신은 이번엔 부채를 펼쳐서 거만한 표정과 몸짓으로 부채질을 했다.



  "빙속초의 해독제가 있다면 어떨까? 그 해독제는 독초가 아닌 분명한 약초라면? 또한 그것을 화한독이 모두 중화되는 순간에 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 뛰어난 의원이 있다면?"



  매장소가 용케도 랑야각에 도달할 때까지 버텨 준 덕에 린신은 노각주로부터 약초를 받아 적시에 약제를 달여 먹일 수 있었다. 기력이 거의 바닥났던 몸은 독의 해독과 함께 조금씩 회복되어, 두어 달 만에 매장소는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치료를 지속한다면 더 이상 독을 품지 않은 정상적인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단번에 완전히 해독 되는 것은 아니네. 어쨌든 맹독이니까 쉽지는 않지.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면 한번 더 뼈를 깎고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을 견뎌내야—"

  "린신……."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에 린신은 말을 멈췄다. 그것은 온 힘을 목과 입술에 모아서 매장소가 힘겹게 낸 목소리였다. 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힘을 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린신은 그것을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왜, 나를……."

  "살렸는가, 그 말이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매장소 대신 린신이 끝을 맺었다. 그는 매장소의 질문에 답을 하기에 앞서, 손을 뻗어 까칠해진 환자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의원이 환자를 버리면 쓰나?"



  장난스러운 대꾸에 다시 한 번 매장소의 얼굴에 원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린신은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매장소의 마른 손을 잡았다.



  "장소. 자네가 더 이상 매장소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은 잘 알겠네. 어쩌면 자네가 임수로 돌아갈 기회는 그 전장뿐이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거기서 죽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다 알고 있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난, 자네를 살리고 싶었어."



  매장소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 눈으로 여전히 자신을 살려낸 이를 끝도 없이 원망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린신은 그 원망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이 매정한 친구야. 비류가 자네가 깨어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려강과 견평이 죽은 듯 누워있는 자네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는 알고?"



  비류, 려강, 견평. 늘 곁을 지켜주던 이들의 이름에 매장소의 눈빛이 흔들렸다.



  "강좌맹은 물론 온 강호가 요새 자네 걱정뿐이야. 다들 매 종주가 살아주길 바라고 있네. 나 역시 내 평생 유일한 벗을 잃고 싶지 않고."



  린신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4년, 꽤 오래 알았지만 매장소는 린신의 눈물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직은 이대로 임수로서 죽고자 했던 결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 눈물은 매장소의 마음 속에 죄책감을 심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자네 손으로 밀어 올린 태자가 황제가 되고, 새로운 천하를 여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더군다나 소경염, 그 자는 자네의 정인이라 하지 않았어? 갈 때 가더라도 그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게 사람 된 도리 아니겠는가? 이래도 죽게 놔 두지 않았다고 원망할 텐가?"



  마침내 경염의 이름이 불리자, 매장소의 결심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린신은 제 두 손으로 매장소의 손을 힘 주어 잡았다.



  "그러니 살아주게. 스스로 살 의지가 없으면 내가 억지로 치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아니, 억지로 치료하려 해 봤자 자네가 버텨주지 않겠지. 살아만 준다면 또 다시 금릉에 돌아가겠다 해도 말리지 않겠네. 어디 그 뿐인가? 자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내 사력을 다해 도울 터이니……."



  린신은 이제 매장소의 손을 잡은 채 그의 몸 위에 엎드려 흐느꼈다. 매장소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고, 린신은 평생 참아온 눈물을 모두 쏟아낼 기세로 하염없이 울었다.



  "……린신."



  한참 만에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매장소가 린신을 불렀다. 린신은 고개를 들어 매장소와 시선을 맞추었다. 매장소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면서 살며시 린신의 손을 맞잡았다.



  "약조하겠는가?"



  린신의 물음에 매장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로 얼룩진 린신의 얼굴에 미소가 크게 번졌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잘 견뎌내면 그리운 정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그것만 생각하게."



  매장소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새 힘이 다 빠진 듯 눈을 감았다. 그 얼굴을 보며 린신은 자신이 기어이 미친 것이라 생각했다. 금릉으로 돌아가더라도 막지 않겠다, 그리운 정인을 만날 생각으로 버텨내라……. 따지고 보면 매장소가 이 꼴이 된 것은 다 그 자 때문이거늘. 금릉에서 지낸 2년여의 시간 동안 매장소의 몸 상태가 얼마나 급격하게 나빠졌던가. 딸려 보낸 의원의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는데, 병세가 악화되는 속도가 그 이상이었던지라 마지막에는 결국 직접 매장소를 돌봐야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말야, 장소. 난 자네와 한 약조는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지킬 걸세. 아무리 죽게 내버려 두라고 애원해도 난 자네가 병으로 죽는 것은 못 봐. 내 말하지 않았는가. 끝까지 살려내 주겠다고."



  린신은 약을 바른 침을 꺼내 시침을 했다. 이것으로 좀 더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동의도 얻었으니 치료는 이제 시작이었다. 화한독에 중독되어 처음 찾아왔을 때와 몇 년 전 남아있던 독이 재발했을 때에 이어, 매장소는 세 번째로 또 다시 어려운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린신에게도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었다. 린신은 반쯤 펼쳐져 있던 부채를 탁 소리가 나게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을 달여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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