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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린매] 상애겁(相愛劫) 11

묻어둔 마음을 내어 보여야 하는 순간






  “강좌맹주 매장소라 합니다.”


  매장소는 편전에 미리 나와 있다가 기현과 그 일행을 맞이했다. 기현은 말로만 듣던 매장소의 우아한 자태를 직접 보고는 넋을 잃을 뻔 했다. 그 탓에 매장소가 공수를 하며 인사를 건넬 때, 저도 함께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예법조차 잠시 잊어, 한 발 늦게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기……, 기현이라 합니다.”


  매장소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매장소와 기현이 서로 마주 앉고, 매장소의 뒤에는 위쟁과 견평이, 기현의 뒤에는 예까지 그를 지켜온 네 무사가 자리했다. 려강은 그들의 옆에 앉아 딱 마시기 좋을 정도로 우러난 차를 두 개의 찻잔에 나누어 따르고 각각 매장소와 기현의 찻상 위에 올려놓은 뒤, 제 주군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잘 오셨습니다. 노정이 고단하셨을 것이나, 상황이 시급하여 방을 내어드리기 전에 편전으로 먼저 모셨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그 대신이라기엔 부족하나 상등품의 차를 준비하였습니다.”


  기현은 황송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강좌맹 본원에 저희를 숨겨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입니다.”


  매장소의 낯에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러분을 쫓고 있는 살수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적에 대해 많이 알아둘수록 방비하기가 쉬운 법 아니겠습니까.”


  기현은 두려움을 가라앉히려 온기가 묻어나오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들은 동해에 적을 두는 살수 집단에서 보낸 이들입니다. 저희 소호당 무사들의 심법은 강한 힘보다는 빠른 발에 의존하는 방식이기에, 어찌 보면 암살에 굉장히 적합합니다. 하지만 세력은 작아도 강호 정파로서의 자부심만은 굳건하여, 이제껏 그런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쯤부터 기현의 표정에 조금씩 분노가 섞이기 시작했다.


  “석 달 전 즈음에 한 사내가 찾아와,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며 소호당의 무사로 살게 해 달라 청했습니다. 우리 소호당은 무예를 익히기를 즐길 뿐, 강호 고수들의 경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에 지친 몸과 마음을 의탁하려는 이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하여, 그 자 역시 받아들였지요. 소호당의 심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헌데, 그는 동해의 살수 집단과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연락책과 만나 나누는 이야기를 제가 이 두 귀로 전부 들었지요. 소호당의 심법을 배워, 살수들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었습니다……! 듣자하니 그는 처음부터 그곳에 속한 이인 듯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장 그를 잡아들이셨고, 규율에 따라 목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기현은 애처로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로군요.”


  매장소가 기현의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기현이 괴로운 듯 눈을 감자, 굵은 눈물이 그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소호당이 동해에서 온 이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무너졌다고만 알고 있었지, 그러한 사연이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소호당은 규모가 작기는 하나, 결코 호락호락한 방파가 아니었기에 의아하게 생각하기는 했습니다만……. 예까지 오시는 동안 몇몇 형제들을 잃기는 하셨으나, 그 정도의 살수들이라면 이만하길 다행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장소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기현의 눈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형제들을 잃은 것은 전부……, 전부 제가 못난 탓입니다……! 제가 이리 약골만 아니었어도…….”
  “아닙니다, 소당주! 소당주의 잘못이 아닙니다.”


  소호당의 무사들 중 한 사람이 기현의 곁으로 다가와 그를 감싸며 위로하였다. 넷 중 가장 체격이 좋고, 나이도 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그가 무사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듯했다.


  “소당주를 지키는 것이 저희의 사명입니다. 모든 것은 형제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소당주께서 강요하신 것은 아니잖습니까. 잘못은 그 극악무도한 놈들에게 있지요.”


  그는 기현을 달래느라 매장소의 시선이 저에게 닿아있는 줄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혹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보다 소상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매장소는 기현이 아닌 그 무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어린 주군을 울린 매장소가 원망스러운 듯 매장소를 보는 그의 눈빛은 매우 차가웠다.


  “저는 소당주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한엽이라 합니다.”


  그런 중에도 예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이 또한 소호당 무사의 자부심이리라.


  “무공이 살벌하고 잔인하기는 하나, 놈들은 어리고 멍청합니다. 그나마 그들이 영리하게 구는 점이라면,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늦은 밤을 택하여 은밀히 움직이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눈속임을 하기가 쉬웠지요. 하여, 예까지 오는 동안 저희는 밤이 되면 두 패로 갈라져, 한쪽은 미끼가 되고, 다른 한쪽은 몸을 숨겼습니다. 몸을 숨기는 쪽은 당연히 소당주가 계신 패였습니다. 소당주를 지키는 것은 당주께서 마지막으로 내리신 명이었으니까요. 미끼가 된 쪽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하수임은 알고 있었으나, 별다른 방책이 없었습니다. 인원은 점차 줄어들어 더 이상 두 패로 나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그래서 강을 건너기 전, 저희가 탈 배 하나만 남기고 모든 배를 부숴버렸습니다. 강폭이 넓어, 경공만으로는 건널 수 없을 터이니 새 배를 구하려면 놈들도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요.”


  매장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


  그 사이 눈물을 다소 갈무리 한 기현이 입을 열었다.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가슴을 찌르고 목을 꺾어버립니다.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입니다. 강좌맹에서 이리 마음을 써 주셔서 감사하기는 하나,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매장소는 다시 한 번 기현을 향해 따스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강좌맹 형제들은 소당주께서 걱정하실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여러분을 도우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금 전까지 온기를 품고 있던 매장소의 미소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기현은 물론, 네 명의 무사들까지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흠칫 몸을 떨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들이 강좌에 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뿐입니다.”




***




  소호당 일행을 강좌맹 본원에 들인 뒤 처음 닷새 동안, 매장소는 강좌맹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소호당은 랑주와 정 반대에 터를 잡고 있었으니, 그곳에서부터 예까지 쫓아올 정도의 집요함이라면, 추적자들은 포기는커녕 더 안달을 낼 것이고, 그만큼 빈틈도 많아질 터였다. 과연, 닷새째 되던 날, 순찰을 다니던 강좌맹원들이 거동이 수상한 자를 봤다는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맹원들이 설명하는 인상착의가 모두 같은 것으로 미루어, 살수들이 흩어져서 목표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끄는 사람, 혹은 그들을 보조하는 사람이 홀로 수색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엿새째부터 매장소는 소호당 일행이 강좌맹 본원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시전에 퍼뜨렸다. 살수들을 본원으로 불러들여 일망타진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객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기현과 소호당 무사들은 본원 가장 깊은 곳, 매장소의 처소 아래에 마련된 밀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 대신 객방에 들어가 앉은 이는 다름 아닌 매장소였다.


  “맹주,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해가 질 무렵, 려강이 등잔에 불을 올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화로의 숯을 뒤집는 견평의 낯에도 불안이 내려앉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네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매장소는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며 답했다. 이미 위쟁에게도 한 번 들었던 질문이었고, 매장소의 답도 위쟁에게 돌려주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병력을 빈틈없이 배치하였으니 귀신이 아닌 한 살수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형제들 중 누군가를 쓰러뜨려야만 하네. 바깥의 지휘는 위쟁이 직접 하고 있으니 아주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어쩌다 한두 놈 정도 놓쳐서 안으로 들어온다 해도 자네들이 있고. 나는 자네들의 충심을 믿네.”


  견평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기어이 입을 열었다.


  “스스로 미끼가 되실 필요가 있느냔 말씀입니다.”


  다소 신경질적인 말투에 려강이 안절부절 못 하였다. 정작 매장소는 평온한 낯으로 책장을 한 장 더 넘겼다.


  “강좌맹주는 곱상한 얼굴로 무사들을 홀려,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손 하나 까딱 않고 손쉽게 세력을 넓히고 있다지?”


  매장소의 입에서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자 려강과 견평은 흠칫 어깨를 떨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자존심 강한 강호의 무사들은 무공 하나 하지 못하는 주제에 강좌맹의 수장이 되어 저들과 같은 무사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매장소를 두고 그렇게 비아냥대곤 하였다. 매장소를 존경하고 사랑하여 충성을 바치고 있는 강좌맹원들은 그 이야기가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 매장소는 이미 전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들이 전하지 않으면 모를 줄 아는가? 내 친우가 랑야각 소각주임을 잊은 모양일세.”


  린신 역시 자신들과 같은 마음일 것으로 생각했던 려강과 견평은 배신감에 얼굴을 구겼다. 매장소는 그런 그들을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서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먼저 물어보았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세간에서 매장소를 어찌 평하는지 알아야 했거든. 평이 아주 극명하게 갈리더군. 허나, 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 강호인의 칭송을 받는 명실상부한 강호의 주인일세.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뼈와 살을 채운 무사들뿐인 강호의 주인이 백면서생이라면 누구든 주목하지 않겠나.”


  영 집중이 되지 않아, 매장소는 결국 서책을 덮어 서안 위에 올려놓았다.


  “뒷방에 앉아 책략만 짜내는 것이 그다지 성미에 맞지 않기도 하고.”


  매장소의 시선은 조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서책의 표지에 닿아 있었다. 표지에 적힌 제목은 상지기(翔地記). 인문지리를 상세하게 기록한 서책이었다. 그것은 화한독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매장소를 위해 린신이 선물한 것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매장소가 객방에 들어앉은 첫 날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갔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매장소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에야 비로소 긴장을 늦추고 침상에 몸을 뉘였다. 강좌맹 본원에 상주하며 매장소의 몸을 돌보고 있는 안 의원은 노기를 감추지 않고 위쟁과 려강, 견평을 나무랐다. 하지만 결국 그 세 사람과 안 의원 중 그 누구도 매장소의 고집을 막을 수 없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대화는 무거운 한숨으로 끝이 났다.

  그 날 밤, 낮 시간을 전부 잠으로 보낸 매장소는 한층 맑은 정신으로 객방 가운데에 나와 앉았다. 전날처럼 려강이 등잔을 밝혔고, 견평은 화로의 숯을 뒤집어 훈기를 더했다. 하지만 전날과는 달리 매장소는 한가로이 서책이나 읽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굳게 닫힌 문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인 듯하군.”


  려강과 견평은 매장소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전날과 무엇이 다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긴장을 놓을 수 없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어젯밤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맹주.”


  려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매장소는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 비록 모든 내공을 잃고, 다시 내공을 쌓을 수도 없게 된 몸이나, 감각은 전부 그대로일세. 마치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미약하긴 하나, 이는 분명 살기일세. 아마 가까이 있음에도 기운을 감추고 있어서 멀리 있는 듯 느껴지는 것이겠지. 적은 이미 코앞에 와 있네. 위쟁에게도 그리 전하게.”


  려강은 다소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위쟁에게로 향했다. 려강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위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다!!”


  과연 매장소의 경고 이후 한 시진 만에 담장을 넘는 몇 개의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살수들의 수는 맹원들의 수에 비하면 많지 않았으나, 워낙 발이 빠르고 체구가 작아, 강좌맹원들의 칼날은 좀처럼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이는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 누구도 강좌맹원들과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는 듯 요리조리 피하기만 할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충돌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그들은 조금씩 등불이 밝혀진 객방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전각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막아라! 이 전각 안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절대 한 놈도 들여보내선 안 된다!”


  위쟁이 맹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맹원들 모두가 칼자루를 보다 단단히 쥐었다. 바로 그 때, 위쟁은 제 곁을 스쳐지나가는 작은 인영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몸을 낮추며 적의 발목을 겨냥하여 검을 휘둘렀다. 한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작은 체구의 살수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무릎을 굽히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위쟁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살수의 정체가 기껏해야 열 두세 살 정도 된 어린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위쟁은 마음을 다잡으며 주머니칼로 어린 살수의 나머지 한쪽 발목과 양 손목의 힘줄을 끊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몸을 일으켰다.


  “으헉……!!”


  위쟁이 칼자루를 고쳐 잡기가 무섭게 한편에서 굵직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살수의 것이 아니라 강좌맹원 누군가의 목소리일 터였다. 하지만 경내는 발 빠른 살수들을 상대로 혼전이 벌어지는 중이어서 어디서 들려온 소리인지 쉬이 파악할 수 없었다.


  “려강! 견평! 혹시 모르니 긴장을 늦추지 말게!!”


  위쟁은 객방 쪽을 보며 소리쳤다. 매장소의 곁에 바짝 붙어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려강과 견평의 눈빛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매장소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만약의 습격에 대비하였다.


  “려강, 견평.”


  일각 정도 지났을까. 매장소가 목소리를 낮추어 두 사람을 불렀다.


  “장지문 너머 정면 중앙과 우측에 각각 한 놈씩 있는 듯하네. 선제공격을 하는 편이 좋을 걸세.”


  려강과 견평의 시선이 각각 매장소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였다. 정신을 한껏 집중하니 아주아주 미약한 기척이 느껴졌다.


  “하오나 맹주, 저희가 맹주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은…….”


  견평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매장소가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그 숨결에 옅은 노기가 묻어나고 있어, 견평은 물론이고 려강까지 마른 침을 삼켰다.


  “명령이다. 지금 당장 적을 공격해.”


  매장소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단호했다. 그것은 려강과 견평에게는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효기장군의 목소리였다. 매장소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상, 곧바로 명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불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매장소의 곁에서 멀어져, 적의 모습을 감춰주고 있는 문짝을 무너뜨리며 선제공격을 펼쳤다. 미처 이에 대비하지 못했던 살수들은 각각 려강과 견평에게 가로막혀, 그들을 쓰러뜨리지 않고는 매장소에게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매장소의 곁에는 등잔이 세워져 있어 얼굴이 명확히 보일 텐데도 살수들은 그가 기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과연 한엽의 말처럼 영리한 이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린 아이……?’


  살수들의 앳된 얼굴을 발견한 매장소는 위쟁이 그랬던 것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쩌다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 것일까. 심지어 아이들의 눈은 텅 비어 있어, 마치 인형이 움직이는 듯했다. 이에 더하여, 려강과 견평이 각각 상대하고 있는 두 아이의 무공은 조금도 다른 부분이 없다는 것 또한 경악스러운 부분이었다. 아이들이 구사하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데에 적합하게 짜인 심법이었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저 잔혹한 심법을 가르쳐 살수로 길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 한 저리도 똑같은 움직임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장소는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이들이 속한 조직에 대해 소상히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맹주!”
  “맹주!”


  또 다른 작은 그림자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네 사람을 지나쳐 매장소에게 달려들었다. 그 살수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체구가 작았고, 그만큼 그 기척도 더 미약하여 매장소조차 쉬이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그 발은 또 어찌나 빠른지,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듯했다. 자그마한 살수는 매장소를 향해 주먹을 뻗은 채 몸을 날렸다. 매장소는 임수일 적부터 몸에 익은 대로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하였으나, 지금의 몸으로는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터였다. 수하들이 말렸을 때 그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던 걸까. 스스로의 오만을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은 듯했다. 매장소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욕심이 과했다. 너무 조급했어. 저세상에 가서 먼저 간 이들을 무슨 낯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 억울함을 이제 아무도 풀어주지 못하겠구나. 역사는 끝내 우리를 역적으로 기록하겠구나. 그리고 내가 이리 가면 그는……,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터인데……. 헌데,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 나는 어찌 하였는가. 매정하게 배웅도 않고 보내지  않았던가.’


  오만가지 생각이 빛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살수의 주먹은 매장소에게 닿지 못했다.


  “자네 제정신인가!!”


  의아함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매장소가 마주한 것은 린신의 성난 얼굴이었다.


  “린신……?”


  어린 살수는 린신의 손에 완전히 제압당해 정신을 잃은 채였다. 려강과 견평이 상대하고 있던 이들 역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이다니, 정신이 나갔나? 한 번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고 나니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것 같나?”


  매장소는 린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린신은 계속해서 질책의 말을 쏟아내었으나, 매장소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를 포함한 모든 소리들이 점차 아득해져갔다. 그저 지금 눈앞에 린신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 허무하게 죽어버리지 않고 두 눈으로 그를 보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인지할 수 없었다.


  “자네, 내 말 듣고 있―”


  매장소가 별안간 저를 끌어안는 바람에 린신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장소……?”


  린신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자, 매장소는 그의 옷자락을 절박하게 움켜쥐며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푸른 비단으로 만든 장포가 형편없는 모양새로 구겨졌다. 혹 어딘가 좋지 않은 것일까. 린신은 매장소를 제게서 떼어내어 상태를 살피려 하였으나 자신의 어깨가 젖어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몸을 굳혔다. 가만히 살펴보니 매장소의 가녀린 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린신은 매장소를 제게서 떼어내는 대신, 그 등을 감싸 안았다.


  “혹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더 있었던 겐가?”


  린신은 매장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매장소는 여전히 린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헌데, 어찌 이러나?”


  매장소는 답 없이 린신을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일 각 정도 지나자, 매장소가 스스로 린신에게서 떨어져나갔다. 그는 평소와 같은 차분한 낯을 하고는 부러 린신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맹주. 전부 처리하였습니다. 다만…….”


  위쟁이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배후를 추궁하고자 생포한 살수들 모두 입 안에 숨겨놓은 독을 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매장소는 려강과 견평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들이 상대했던 살수들의 상태를 살폈다.


  “이들도 숨을 쉬지 않습니다. 소각주께 공격을 받은 직후에 독을 삼킨 모양입니다.”


  견평이 보고했다. 매장소는 린신을 흘끗 쳐다보고는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가장 어린 살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 아이마저 죽었다면 랑야각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는 죽지 않았네. 허나, 이 녀석에게서 배후를 알아내기는 힘들 걸세.”


  린신이 말했다. 매장소의 시선이 비로소 린신에게로 향했다.


  “아마 강호에서……, 아니, 천하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 이들이 아닐까 싶네. 빈민층이나 노비의 자식들을 납치하거나 고아들을 데려가 암살을 위한 기술들을 가르치고, 약물을 이용하여 내공을 높이는 사술을 통해 어리고 무자비한 살수들을 만들어 내거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데다가 내공을 높이는 약물이 두뇌에 영향을 미쳐, 아이들은 오로지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살인 인형이 되어가지. 그러니까 여기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일세.”


  린신은 아이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러한 사술은 명줄마저 짧아지게 만들어, 대부분 성년을 맞이하기도 전에 죽는다네.”


  린신의 설명에 매장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어찌 그리 할 수 있는가! 이 어린 아이에게 어찌……!”


  그는 어린 살수들을 보며 자신이 아직 금릉의 대귀족이었던 시절에 가까이 지냈던 두 아우를 떠올리고 있었다. 리양 장공주의 아들로 자신과는 이종사촌이었던 소경예와 임섭의 절친한 지기인 국구 언궐의 아들 언예진이 그들이었다. 매령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 아이들은 둘 다 고작 열 살 전후였으니, 지금 이곳에 쓰러져 있는 살수들과 나이가 그 당시 두 아이의 나이와 엇비슷했던 것이다. 아직 철없이 마냥 즐겁게 뛰어 놀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살인 도구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쉬이 쓰고 쉬이 내버린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직접 이들의 본거지를 쳐서 뿌리를 뽑을 걸세. 이런 끔찍한 짓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이유야 어찌되었든 강좌맹 본원을 습격하였으니 명분도 충분하네.”


  그러자 린신이 매장소의 한쪽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또 무모한 짓을 벌이려고?”


  매장소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린신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그저 방심했을 뿐이라고, 실수는 한 번 뿐일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린신의 굳은 얼굴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언제나처럼 농을 치듯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으나 이처럼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표정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뿜어내는 기운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지금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크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껏 린신은 단 한 번도 매장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장소, 제발……!”


  린신은 이제 매장소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채였다. 매장소는 제 어깨를 붙잡은 린신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린신…….”


  매장소가 조심스럽게 린신의 이름을 부르자, 린신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매장소를 끌어안았다.


  “자네의 마음을 알아. 자네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아.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감추어야만 했던 이유 역시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앞으로 수도 없이 많을 자네의 무모한 행동을 전부 막을 수 없어. 오늘처럼 지켜낼 수 있다면 다행이나, 그리 할 수 없는 날이 올 지도 모르지. 언제 갑자기 자네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 그래서 이야기를 해야겠네. 이것이 자네 마음에 짐을 하나 더 얹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이리 짐을 지워 주면 그 짐 때문이라도 자네가 더 필사적으로 살아줄 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매장소는 린신이 다음에 할 말을 예상하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품에서 얼굴을 붉혔다. 린신은 매장소를 더욱 힘껏 끌어안고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자네를 은애하네.”








안녕하세요, 융입니다.

이제서야 연재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상애겁의 웹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상애겁의 결말은 5월 6일 쩜오어워드를 통해 발간되는 종이책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선입금 예약과 현장 판매, 통판을 함께 진행할 예정이오니 참고 바랍니다.

신청 및 입금은 빠르면 이번 주말, 늦어도 다음주 중에는 시작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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