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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매] 말하고 싶은 게 있어

호우주의보 발간 단편집 수록 단편 유료공개합니다.

* 호우주의보에서 판매한 린매 단편집 <그들의 계절> 수록 단편인 '말하고 싶은 게 있어'입니다.
* 현대AU. 보건교사 린신x학생 매장소.
* 랄라스윗의 노래 '말하고 싶은 게 있어'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 발간된 회지 원고와 내용은 동일하나, 웹에서 읽기 편하시도록 문단 간격을 조정했습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어






  얇은 뿔테안경, 넥타이는 없지만 맨 위 단추까지 단정하게 채워 입은 셔츠,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단정치 못한 층진 장발을 대충 하나로 묶은 앳된 얼굴의 남자. 외양만 보고 이 남자의 직업을 짐작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흰 가운을 걸치고 나서야 의료계나 연구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겨우 추측할 수 있었고, 한 남학교의 보건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것을 본 뒤에야 비로소 그가 보건교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 린신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새내기 보건교사였다.

  거대 의료 사업체를 운영하는 린씨 집안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린신은 어릴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특했다. 린신의 위로는 누나 한 명과 두 명의 형이 있었는데, 약학을 전공한 누나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제약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고, 형들은 모두 의사였다. 가족들은 린신이 형제들처럼 약대나 의대로 진학하여 집안에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린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병원이나 아버지의 회사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다.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 몇 년간 치열한 대립 끝에 이루어진 합의의 내용은, 첫째, 어찌 되었든 의료업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둘째, 그 안에서라면 업종이나 직장 선택은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으로 하게 된 것이 보건교사였다. 린신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교사’가 되었다는 것에 폭소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고 공부는 전혀 좋아하지 않아서, 학창시절에도 누나와 형들이 용돈을 준다고 하면 간신히 시험공부를 시작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나마도 대학 입학 이후에는 통하지 않아서 남들 놀 때 놀고, 남들 공부할 때도 놀면서 학교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보건교사 자격을 따낸 것은 순전히 뛰어난 두뇌 덕이었다.

  린신이 보건교사로서 정식으로 첫 출근을 한 것은 봄 학기의 끝자락,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미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사 일정이 거의 다 마무리 되어, 학교 전체에 나른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린신은 오전 내내 인수인계 사항을 적어놓은 노트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는 어떤 학생에 대한 것도 있었다.


  “매장소라…….”


  린신은 그 학생의 이름을 읊조려보았다. 이름 아래에는 나면서부터 심장이 좋지 않아 만 18세에 이른 지금까지도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이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종종 보건실 침대에 누워 쉬었다 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오려나?’


  린신의 시선이 빈 침대에 가 닿았다. 그 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오전 내내 딱히 한 일도 없고 그다지 허기가 느껴지지도 않지만 식사는 절대 거르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철칙에 따라 린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교직원 식당에서 그저 그런 점심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커피까지 한 잔 마신 뒤에 보건실로 돌아왔는데, 나가기 전까지는 비어 있던 침대에 누군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니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학생임은 확실해 보였는데, 점심시간이 끝날 때가 다 되었는데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기도 거의 끝나가니, 이런 식으로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려는 건가?’


  린신은 저의 학창시절을 상기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수업보다는 잠이 더 중요한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제는 학생이 아닌 교사의 입장이었기에, 그는 학생을 깨워야만 했다.


  “어이, 일어나. 점심시간 끝났어. 땡땡이는 허락 못 해. 내가 다른 선생님들한테 혼난다고.”


  어깨를 붙잡고 흔들자, 이불이 부스럭 소리를 내더니 그 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 새하얀 얼굴이 나타났다. 린신은 순간 이 학교가 남녀공학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도저히 남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운 얼굴이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얼굴선과 빚어놓은 듯 예쁘게 자리한 코,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작고 붉은 입술, 크고 맑은 눈을 반쯤 내리깐 모습까지, 그야말로 영화 속 청순가련형 히로인이었다. 다만, 이 예쁜 소년의 눈 아래에는 옅게 검은 물이 들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환자였다.


  “아, 미안.”


  린신은 즉시 사과부터 했다. 이제 보니 소년의 교복 오른쪽 가슴께에 ‘매장소’라는 이름의 명찰이 달려 있었다.


  ‘이 녀석이 매장소……. 나 참, 웬만한 여학생도 이렇게 곱상하진 않겠다. 깜짝 놀랐네.’


  매장소는 잠기운을 떨쳐내려는 듯 머리를 흔들고 기지개를 켰다.


  “힘들면 조금 더 쉬었다 가도 돼. 내가 확인증 써 줄 테니까―”


  린신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오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매장소는 화들짝 놀라 시간을 확인하더니 린신을 본체만체하고 서둘러 보건실에서 뛰쳐나갔다. 린신은 반사적으로 그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민망함에 괜스레 스트레칭을 했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담.’


  날이 더워서일까. 린신은 목덜미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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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텍스트1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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