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리 히죽거리나?”


  멍청하게 웃고 있는 린신을 보며 매장소가 미간을 좁혔다. 린신은 제 품 안에 있는 매장소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좀 놓게! 숨 막혀……!”


  하지만 린신은 매장소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사랑스러운 정인을 안고 그의 얼굴 곳곳에 입맞춤을 퍼붓는 데에 열중할 뿐이었다.


  “옛 일을 이야기하고 있자니, 자네가 내게 연모를 고백해왔을 때의 일이 생각나서 말이야. ‘정인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하면서…….”


  능글능글 웃으며 옛 이야기를 하던 린신과 달리, 매장소는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럴수록 얄미운 여우의 입은 더욱 신나게 움직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결국 참다못한 매장소가 그 때처럼 한 손으로는 린신의 옷깃을 틀어쥐고 다른 손으로는 불을 피워내고 나서야 린신은 입을 다물었다.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린신의 낯을 보고, 매장소는 웃음을 터뜨렸다.


  “린신 상선께선 이 평범한 봉황이 그리도 두려우신가?”


  그는 부러 불꽃을 린신의 얼굴 가까이 갖다 대며 물었다. 린신은 다소 자존심이 상한 듯했으나,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애써 입 꼬리를 올렸다.


  “아무렴, 내 아무리 비승상선 했다 해도 자네는 못 이기지. 허나, 신력은 좀 아껴두게. 자네, 이제 곧 천겁을 겪어야 하지 않나.”


  천겁이라는 말에 매장소의 낯에서 장난스러운 기색이 단번에 지워졌다. 동시에 그의 손 위에서 일렁이던 불꽃도 사그라졌다. 겁이란 신선으로 태어난 이들이라면 마땅히 치러야 하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신선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범계 인간들이 오랜 기간 수련을 해서 간신히 얻는 신선이라는 지위를, 그저 운이 좋아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늘은 공평하므로, 날 때부터 신선이었던 이들은 목숨을 걸고 겁을 겪어야만 했다. 잘 견뎌내면 계품이 오르지만, 견뎌내지 못하면 혼돈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매일같이 수련을 거듭하여 언젠가 찾아올 겁을 이겨낼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었다. 천겁은 그러한 겁의 하나로, 하늘이 내리는 벼락을 견뎌내는 시험이었다. 천뢰로부터 살아남으면 상선이 되어 한 층 높은 지위에 올라설 수 있는데, 몇 달 전, 린신에게 천겁이 찾아왔고, 그는 이 겁을 잘 견뎌내고 막 상선이 된 몸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목숨을 잃지 않았을 뿐, 심한 내상을 입어 절안에게 치료를 받아야 했고, 치료를 마친 뒤에도 두 달간 폐관수련을 해야만 했다. 매장소에게도 바로 그 천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네는 내가 천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매장소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이미 상선이 되었네만, 그런 나보다도 지금의 자네 신력이 더욱 강해. 이렇게나 강한데 이겨내지 못할 리가 없잖은가.”


  오히려 린신이 더욱 자신감에 찬 목소리였다. 하지만 매장소는 고개를 저었다.


  “신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나. 신력으로 몸을 보호하며 견뎌내어야 하는데, 마지막 벼락이 떨어질 때까지 내 체력이 버텨줄지 확신할 수 없어. 끝까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벼락을 맞는다면 나는…….”


  매장소의 걱정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이가 천겁을 겪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린신의 천겁이었다. 천뢰가 떨어지던 날에도 린신은 하루 종일 십리도림에서 매장소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질녘, 먹구름이 하늘을 메우기 시작했고, 이내 린신의 천겁이 시작되었다. 천겁이 시작된 것을 눈치 채고 한달음에 달려온 절안은 매장소를 린신에게서 떨어뜨리고 그 주변을 결계로 감쌌다. 절안이 만든 결계 안에서, 매장소는 린신에게 몇 번이고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꿋꿋하게 서서 버티던 린신은 마지막 벼락을 맞자마자 힘없이 고꾸라졌고, 매장소는 린신이 이대로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마구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다행히 린신의 부상은 치료만 잘 받으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으나, 이 날의 경험으로부터 매장소는 자신이 결코 천겁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게 된 것이었다.


  “내 자네가 나만 두고 죽게 내버려 둘 것 같나? 나만 믿게. 자네가 천겁을 겪다 죽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허세 가득한 이야기에 매장소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어쩌면 천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린신이 이만큼이나 확신을 갖고 있다면 정말로 가능하지 않을까. 린신이 하는 말이라면 다 믿을 수 있으니까.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그를 은애하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 내겐 자네도 있고, 절안 형님도 있으니까…….”


  그래서 매장소는 천겁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목숨만 붙들어 보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다. 천겁이 끝난 뒤에도 숨만 붙어 있다면 절안과 린신이 어떻게든 자신을 살려놓을 것이기에. 하지만 저만 믿으라는 린신의 말은, 매장소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




  그 해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찾아왔다. 매장소에게 겨울이란 병이 들어 내내 침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지 않더라도 추위 때문에 처소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굉장히 갑갑한 계절이었다. 이번에도 겨울에 들어서기 무섭게 매장소는 고뿔이 들렸고, 다행히 그 정도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으나, 절안은 병이 커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외출을 금지했다. 린신은 그런 매장소 곁에 꼭 붙어서 정인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자네, 이 책은 읽어봤나?”


  탕약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연거푸 차를 들이켜며 입 안에 남은 쓴 맛을 지워내고 있는 매장소에게 린신이 품에 넣어온 서책을 꺼내어 내밀었다. 매장소는 그것을 받아들어 표지에 적힌 제목을 확인했다.


  “상지기……? 처음 보는 서책이네만.”


  쉽게 지치는 몸 때문에 겨울이 아니더라도 실내에서 지내는 일이 더 잦았기에, 매장소의 취미란 서책을 보는 것이나 글을 짓는 것, 금을 타는 것 따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5만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내내 그러하였으니, 선계에서 매장소가 읽지 않은 책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과연, 아무리 자네라도 범계의 서책까지 전부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야.”


  린신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범계는 이곳보다 시간의 흐름이 빠르지 않나. 이곳의 하루는 범계의 1년과 같으니, 이곳에서 하루가 지나는 동안 범계의 서책은 1년 치가 늘어나겠지. 전부 읽어보는 것은 무리야.”


  매장소는 그렇게 말하며 상지기의 첫 장을 펼쳐 그 내용을 눈으로 대강 훑었다. 아무래도 범계 곳곳의 지리에 대해 적어놓은 책인 듯했다.


  “진이가 범계에 놀러 갔다가 가져온 서책일세. 고뿔이 다 낫고 기력이 회복되면 나와 함께 이 서책에 적혀있는 곳들을 한 곳씩 가보세나. 자네 말처럼 이곳의 하루는 범계의 1년과 같으니, 이곳은 아직 겨울이더라도 하루 중 어떤 시간에 범계는 봄이나 여름을 지나고 있을 게야. 그 때에 맞춰 다녀오면 되지 않겠나. 진이가 이야기 해 준 것도 그렇고, 그 서책에 쓰여 있는 것도 그렇고 범계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은 것 같아. 어떤가?”


  병약한 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얌전한 취미를 갖게 되었을 뿐, 매장소는 본래 보다 활동적인 쪽을 선호했다. 그러니 처소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근래의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물론, 존경하는 형님과 사랑하는 정인이 이를 마음 아파하고, 이러한 상황을 만든 저의 병약함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낄 것을 알기에, 그는 언제나처럼 서책을 붙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절안은 그 미소에 속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이제는 린신도 그 뒤에 감춰진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매장소 역시 그들이 자신의 웃음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린신이 상지기를 가져온 이유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자네까지 범계에 가보지 못했군. 삼백 살 즈음부터 지금까지 수련을 하고, 의술을 익히고, 나를 돌보는 데에 자네의 시간을 전부 쓰고 있으니.”


  매장소는 웃는 낯으로 이야기했으나, 목소리에서 쓴 맛이 느껴졌다. 린신은 함께 범계에 다녀오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매장소에게는 투정부리는 것으로 느껴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범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딱 그 정도였다. 린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매장소였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닐세. 나는 범계에 영영 가보지 못해도 괜찮아. 허나, 1년 중 대부분을 처소 안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자네의 답답한 기분은 괜찮지 않네. 그래서 제안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어. 자네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든 좋아. 평생 이 안에 갇혀있어야 한다고 해도.”


  손을 내저으며 열심히 해명하는 린신을 보며 매장소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네 마음을 내가 모르겠나. 그저 나 역시 자네를 연모하는 만큼 내 곁에 발이 묶여버린 자네를 안타까워하는 것뿐이야. 다행히 이번 겨울에는 고뿔이 그다지 심하지 않으니,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네. 탕약도 잘 먹고, 다 낫기 전까지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겠어. 회복하는 즉시 범계 유람을 떠나세.”


  린신은 다짐하듯 이야기하는 매장소의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5만 년을 살아왔으나 두 사람 모두 청구와 십리도림 주변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범계로의 유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다 지나도록 두 사람은 유람을 떠날 수 없었다.

  린신이 매장소에게 상지기를 건넨 바로 다음 날, 십리도림 위로 새카만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이 어찌나 두텁게 쌓였는지 한낮에도 햇살을 조금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햇빛의 온기가 완전히 차단되자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고, 그것은 곧장 매장소의 병을 악화시켰다.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한 지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이리 되어서 미안하네…….”


  고열에 시달리느라 눈꺼풀 들어 올릴 힘조차 바닥났으면서, 매장소는 침상 옆에 앉아있는 린신의 손을 붙잡고 사죄의 말을 건넸다. 린신은 고개를 저으며 매장소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매장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잠시 후, 문 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절안이었다.


  “장소야!!”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매장소를 부르며 곁으로 다가왔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린신은 미간을 좁히며 절안을 쳐다보았다. 절안은 린신 쪽으로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매장소를 바라보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이대로는 위험하겠는데…….”


  늙은 봉황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제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소리야? 뭐가 위험해?”


  린신이 자꾸만 피어오르는 불안을 감추며 물었다. 절안은 린신과 매장소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괴로운 낯으로 눈을 감으며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인 것 같네. ……장소의 천겁.”


  절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린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말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좋지 않은 상황들 중 최악이었다.


  “정말이야? 그럼 저 먹구름이…….”


  절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침상에 누운 채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매장소의 낯에도 두려움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린신이 애원하듯 절안의 양 상박을 붙잡았다. 린신의 두 손도 매장소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오늘은 안 돼. 보면 알잖나. 저 상태로 천뢰를 맞으면 장소는……! 하루만 미뤄주게. 최초의 봉황이 그 정도도 못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절안은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린신은 그를 더욱 단단히 붙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아니면 병이라도 고쳐놔! 사해팔황 최고의 의원이잖아!! 나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의 치유술이라면 가능할거야. 그렇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리 최초의 봉황이고 사해팔황 최고의 의원이어도 불가능한 일이 있음을, 린신도 모르지 않았다. 부신마저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혼돈으로 돌아갔으니, 그 아들 격인 절안에게 하늘이 내리는 겁을 미룰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매장소의 병약한 몸은 넘치는 신력 때문이기에 함부로 신력을 이용한 치유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위험을 감수하고 치유술을 사용한다 해도 이미 천겁이 코앞에 닥친 만큼 첫 벼락이 내릴 때까지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도, 그는 잘 알았다.


  “제발 뭐라고 말 좀 해 보게!!”


  하지만 이대로라면 매장소의 앞에 놓인 것은 비승상선이 아닌 죽음이었다. 그러니 무엇이라도 붙잡고 애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때, 어차피 벌어질 일이니 더 지체할 것 없다는 듯, 곧장 첫 번째 벼락이 떨어졌다. 그것은 처소 지붕 위로 떨어져, 매장소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천뢰를 맞은 지붕에 불이 붙었고, 이는 순식간에 전각 전체로 번져나갔다.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불붙은 기둥이 맥없이 쓰러지며 지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린신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매장소를 안아 들었다.


  “뭘 어쩌려고 그러나?”


  절안이 물었다.


  “도망쳐보려고.”


  참으로 무모한 답이었다. 린신의 말처럼 천겁을 견뎌내는 것에 반드시 천뢰를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겁이 끝날 때까지 수도 없이 떨어질 천뢰를 전부 완벽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그걸 방법이라고…….”


  절안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린신 역시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진심이었다. 순간, 두 번째 벼락이 떨어졌고, 전각은 더 이상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린신은 매장소를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십리도림 위를 가득 채운 먹구름은 언제라도 벼락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듯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린신은 매장소를 안은 채 도화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겨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벼락이 떨어졌고, 그것은 잘 뻗은 나뭇가지들만 잔뜩 부러뜨리고 매장소에게는 닿지 못했다. 가지가 부러져 방패막이가 사라지자, 린신은 다른 나무 아래로 몸을 옮겼다. 네 번째 벼락 역시 나뭇가지만 부러뜨리는 것에 그쳤다. 린신은 또다시 다른 나무로 이동했다. 그런 식으로 일곱 번째 벼락까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술래잡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하필이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날 때, 여덟 번째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역시 매장소에게 닿지는 않았다. 린신이 스스로를 매장소를 지킬 방패로 삼은 것이었다. 천뢰는 린신의 등을 강타했다.


  “이제 그만 하게, 제발……! 나 때문에 자네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아. 제발, 린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주저앉아서도 저를 품에서 놓지 않는 정인을 향해, 이번에는 매장소가 애원했다. 린신은 그럴수록 오히려 매장소를 더욱 단단히 안았다. 갓 상선이 된 풋내기가 한 번 천뢰를 맞은 몸으로 더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린신은 매장소를 감싸 안은 채로 몸을 웅크리며 엎드렸다. 벼락은 가차 없이 린신의 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리 비키게……! 이건 내 천겁이야!”


  매장소는 린신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린신은 매장소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매장소의 목소리가 좀 더 높아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늘은 쉼 없이 벼락을 내리고 있었다.


  “천뢰는 내가 맞아야 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이제 그만…….”
  “거 참, 시끄럽네!”


  린신이 매장소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그의 입 안에 고여 있던 피가 흘러나와 매장소의 옷깃에 붉은 물을 들였다. 피의 양으로 보아, 내상이 상당한 듯했다.


  “그럼 나더러, 큭……! 나더러 자네가 죽도록, 읏, 내버려 두라는 말인가?”


  린신은 천뢰를 맞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정인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건 나도 같아……. 그러니 제발, 이러다 자네가 죽겠어…….”


  매장소가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린신은 그런 매장소를 향해 있는 힘껏 웃어 보이며 자신의 신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매장소에게 더욱 튼튼한 방패가 되어 주기 위함이었다. 마지막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린신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고, 매장소의 눈물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사정없이 내리던 벼락이 멈추고 먹구름이 걷히며 하늘 가득 노을이 걸리자, 린신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린신……!”


  매장소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는 꿈쩍도 않던 린신의 몸이, 그가 정신을 잃자 너무나 쉽게 밀려났다. 린신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매우 심각했다. 천뢰를 모두 받아낸 등은 온통 상처로 뒤덮여, 얼마 전에 새로 마련했다던 그의 하얀 의복은 등 부분만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린신이 내상을 입어 토해낸 피로 적셔진 매장소의 옷깃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 으아아……!!”


  매장소는 말하는 법도, 흐느끼는 법도 잊어버린 채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저 때문에 린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것이었다. 숨 쉬는 방법도 점점 잊어가는 듯 이따금씩 숨이 막혀왔다.


  “장소야, 정신 차려라!”


  한 발 늦게 따라온 절안이 매장소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제 앞에 있는 이가 절안이라는 것을 깨달은 매장소는 그의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애원의 손길이었다.


  “혀, 형님……, 린신을, 리……, 린신을, 흐윽……, 살려주세요…….”


  한 순간 말을 잊었던 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매장소는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제 정인을, 살려주세요……. 제가 모, 못나서, 정인을 죽……, 죽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 부상이 심하긴 하지만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니야.”


  절안은 매장소를 더욱 강하게 붙잡으며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그러나 매장소의 귀에는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장소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절안을 바라보며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그 말 이외의 다른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결국 절안은 손을 들어 매장소의 뺨을 내리쳤다.


  “정신 차려, 매장소!”


  다행히 5만여 년의 삶 동안 단 한 번도 손찌검을 당해본 적 없는 매장소에게 이러한 물리적인 충격 요법은 꽤 효과적이었다. 마비되었던 매장소의 머리가 하나 둘 제 기능을 되찾았다.


  “지난번에도 보지 않았느냐. 이 아이는 벼락 몇 번 맞았다고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 물론 가벼운 부상은 아니니 이대로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다면 죽겠지. 허나, 지금 여기 있는 것이 누구더냐.”


  절안은 두 손으로 매장소의 얼굴을 잡아 돌려 제 쪽을 똑바로 쳐다보게 했다.


  “……사해팔황 최고의 의원……, 절안 상신이십니다…….”


  답을 하는 매장소의 얼굴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 것을, 절안은 놓치지 않았다. 조금 전, 매장소의 뺨을 내리친 절안의 손이 이번에는 매장소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걱정 말고 이제부터는 내게 전부 맡기거라.”




***




  린신은 그로부터 엿새간 깨어나지 못했다. 빈틈없이 매장소를 감싸는 것에 급급해 정작 천뢰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는 것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에 그 자신의 천겁 때보다도 크게 앓았던 것이다. 매장소는 린신을 돌보는 것을 돕고 싶어 했으나, 절안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 고뿔이 다 낫지 않은데다가 병상에 누운 린신을 볼 때의 매장소의 낯이 괴로움으로 물드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탓이었다.


  “깨어나자마자 마주한 얼굴이 늙은 봉황이라니…….”


  그러한 이유로 린신이 깨어났을 때, 그의 곁에는 절안 뿐이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너무 무례하군. 그냥 죽게 둘 걸 그랬나?”


  린신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네는 내 안위보다도 어여쁜 아우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 걱정되었던 거잖나. 내가 모를 줄 알고?”


  절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허, 소리를 냈다.


  “우리가 지금은 이리 편하게 지내고 있지만 어쨌든 자네는 내 유일한 제자거든? 나는 제자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매정한 스승이 아니네. 뭐……, 지금은 장소 쪽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네만.”


  그 말에 린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소리야? 장소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절안이 한숨을 지으며 제 이마를 짚었다. 이불보를 움켜쥔 린신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분명히 마지막 벼락까지 모두 받아냈는데, 혹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던 것일까? 진짜 마지막 천뢰가 하나 더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는 절안의 답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 수도 없이 그 날의 일을 되새겼다.


  “겁을 겪는 이유는,”


  절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하늘이 모두에게 공평하기 때문일세. 운이 좋아 신선인 부모를 만나, 아무런 노력 없이 신선의 지위와 높은 신력을 얻었으니, 마땅히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지. 헌데, 이러한 공평함은 겁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만일 천겁을 가벼이 넘겼다면, 그만큼 정겁을 혹독하게 겪어야 해.”


  절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린신은 마른 침을 삼켰다.


  “혹독한 정겁이라면, 겪는 동안 마음 아프고 괴롭기야 하겠지만, 목숨이 위태로워질 일은 없잖나. 정겁은 인간이 되어 겪는 겁이고, 인간으로서 죽는 것은 다시 신선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니까……. 신선으로 돌아오면 정겁은 끝이 나는 것이고.”


  절안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 봉황의 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나? 봉황은 죽을 때 화염에 휩싸여 재가 된다네. 그리고 그 재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즉, 알이 생겨나지. 그 말인 즉, 장소의 알이 생겨났을 때, 누군가 죽었다는 뜻 아니겠나. 바로 그 봉황이 정겁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것이었네. 범계에서의 가슴 아픈 인연을 잊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지. 천겁이든 정겁이든 목숨을 걸고 치르는 시험임은 마찬가지란 이야기일세.”


  두 사람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후일의 혹독한 정겁을 염려하여 그대로 천겁을 겪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매장소는 결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아는 까닭에, 두 사람 모두 자책도, 원망도, 후회도 할 수 없었다.


  “장소에게는 내가 있어. 5만 년 전에 장소의 알을 남기고 재가 되었던 그 봉황처럼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걸세. 장소가 범계에서 어떠한 시련을 겪더라도 선계로 돌아오면 내가 있을 테니까……. 천뢰를 대신 맞은 것은 내 뜻이지, 장소의 뜻이 아니었네. 그러니 그로 인해 장소가 위험해진다면, 내가 그것까지 책임을 져야 함이 옳아. 그러니까 장소는 괜찮을 걸세. 괜찮을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린신은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절안은 린신의 다짐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 그 주먹 위에 제 손을 얹어다. 매장소의 탄생에서부터 얽히기 시작한 린신과 매장소, 두 사람의 인연은, 그 끝이 좋든, 좋지 않든, 이제는 결코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엉켜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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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융입니다.
보통은 연재물에 코멘트를 달지 않는 편이지만,
상애겁을 읽고 계신 분들께 알려드릴 일이 있어,
부득이하게 몇 자 적습니다.

제가 1월 1일부터 12일까지 연수원에 들어가게 되어서
그동안은 연성을 단 한 글자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즉, 이 글이 올라가는 시점에는 이미 연수원에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PC 사용이 불가능해서 새 글을 적는 것은 힘들지만,
폰으로 이미 적어놓은 글을 업로드하는 것 정도는 가능해서 다행입니다ㅠ
그런 고로, 다음 편은 조금 더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수와 상관 없이 상애겁 3편도 거의 일주일만에 업로드하게 되었는데,
1월부터의 연재텀은 어찌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규칙적으로 출퇴근을 하는 생활을 해야 해서...
아마도 짧아야 일주일이고, 더 길어질 가능성이 높겠지요ㅠ
하지만 절대 연재 중단 없이 꾸준히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4월 쩜오 때 소장본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드리면...
연재텀이 얼마나 길어질지 예상이 되시려나요^^;;

연수원에 있는 동안 상애겁을 업로드할 수 없는 대신,
지난 번 행사 때 냈던 단편집 '그들의 계절'에 수록된 단편들을
차례대로 유료공개 할 생각입니다.
비록 유료공개입니다만, 단편들을 먼저 읽고 계시면
연수가 끝나는대로 최대한 빨리 상애겁 4편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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